• 최종편집 2025-03-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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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송준길의 묘는 처음에는 연기에 장사하였다. 그 뒤 1676년(숙종 2) 회덕, 1689년 공주로 옮겨졌다가 1700년(숙종 26)에 현재의 자리인 대전광역시 서구 원정동으로 이장하였다. 

 

묘표와 묘비는 이장 후에 세워진 것이며, 여기에 문인석 1쌍과 상석이 있다. 묘비문은 외손인 판서 민진후가 짓고, 증손되는 현령 송요좌가 써서 1711년에 건립하였다. 묘표의 대좌 윗면은 연꽃으로, 앞면은 당초문, 그리고 후면은 험상궂은 귀신의 얼굴을 조각으로 당시의 묘석물 양식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묘의 전면에 위치한 상석에 붙여진 향로석은 두 마리의 석수가 향로다리를 감싸안은 특이한 형상으로 차일끈을 매어두는 1조 4개의 차일석 가운데 앞의 두 개는 원숭이 머리 모습이다. 동춘의 묘 아래에는 공조 정랑을 지낸 그의 아들 광식의 묘가 있다.


송준길의 자는 명보, 호는 동춘당, 본관은 은진이며 1624년 진사가 되었다가 효종이 즉위하자 집의로 기용되었다. 

 

효종과 같이 북벌 계획 도중 김자점의 밀고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대사헌을 거쳐, 1659년 병조판서로 송시열과 같이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로 논란 중 승리하여 우참찬·이조판서가 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성리학자로서 예학에 밝았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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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자! 대전문화유산을 찾아서 / 송준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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