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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중헌디
    무엇이 중헌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인생에 있어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건강, 돈, 명예 아닐까? 그래서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도 생겼다. 돈, 명예, 건강은 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건강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을 망치는 원인은 마음이다. 성경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그 어느 민족보다 강하고 담대한 것은 보장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칼슨이 쓴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에서 그도 사소한 것에 매여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 말고 잊을 것을 잊고 버릴 것을 버리고,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을 대범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의 큰 흐름은 토니 로빈스가 썼던 책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알프레드 아들러의 '인생의 지지 않을 용기'와도 흐름이 비슷하다. 생각 바꾸기를 통해서 감정을 전환시키고 쓸데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막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기본은 급한 것부터 하기 보다는 중요한 것부터 하는 습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이 누구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당신 자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마음의 평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떤 상황에든 남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행복과 타인, 주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 자신을 몹시 짜증 나게 하는 존재가 있을 때, 잠시 눈을 감고 그 사람이 귀여운 어린 아기라고 상상해 보자. 그들의 가냘픈 모습과 순순하고 귀여운 눈망울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얄미운 사람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다면 이번에는 그 얄미운 사람이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가엾은 노인이라고 상상해 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며 매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분이 저조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말하라. "이것도 그냥 지나갈 거야. 지난번에도 그랬어 결국은 좋게 될거야" 그렇게 하고 긍정하고 소망을 갖어 본다.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인생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새롭게 다짐한다. 모든 것에 신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다루기 힘든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 일이 제대로 마음먹은 대로 성사되지 않을 때 이 영적인 사실을 떠올려 보라. 마음이 안정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깊고 넓어질 것이다. “무엇이 중헌디~”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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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 꿈은 이루어진다.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유명한 찰리 패덕이 어느 날 클리블랜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연설중에 학생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강당 안에 미래의 올림픽 챔피언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자. 연설이 끝난 뒤 바싹 마르고 키가 껑충한 흑인 소년이 쭈삣거리며 찰리 패덕에게 다가 왔다. 한눈에 봐도 숫기가 없고 가난한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찰리 패덕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아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육상 챔피언이 될 수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요!” 라고, 찰리는 기대에 찬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할 수 있고 말고! 네가 챔피언을 목표로 삼고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다면 너는 분명히 올림픽에서 챔피언이 될 수 있단다!” 1936년 뮌헨 올림픽에서 그 소년은 세계 기록을 갱신하고 금메달을 땄다. 그가 바로 제시 오웬즈다. 꿈은 꾸어야 이루어진다. 꿈을 잉태하면 꿈이 현실로 태어나는 것이다. 꿈을 꾸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게 된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는 사람은 적다. 그 이유는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도 아버지와 어머니, 11형제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함으로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에 복이 임했는데 호사다마처럼 성폭행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 간다. 그곳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므로 인정을 받았다. 그후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고 대책까지 말한 그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으로 인정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훗날 그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러 와서 그에게 절하며 인사했다. 꿈은 큰 꿈을 꿔야 하며, 모두가 선호하고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바람직하다. 자신만의 망상이 되면 오히려 성취되어도 꼴불견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홍익인간의 자세로 모두를 이롭게 할 장본인이 될 것을 꿈으로 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또 한사람이 떠 오르는데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비가 새는 통나무 집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어머니에게 받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을 했다. 어느 날 아버지와 길을 걷다가 흑인이 백인에게 죽도록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흑인은 왜 저렇게 짐승처럼 맞아야 합니까?” 아버지 왈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저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법을 바꾸면 된다.” “법은 누가 바꿀 수 있어요?” “대통령은 바꿀 수 있다.” 이 말에 링컨은 “그럼 제가 대통령이 되어 이 좋지 않은 법을 바꾸겠습니다.” 이렇게 뜻을 정하고 그때부터 미 상원의원, 하원의원 선거에 나가 계속 낙선을 거듭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가 드디어 꿈꾸었던 미합중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끈기와 집념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낙심하면 때가 오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가 유익한, 모두를 유익하게 할 꿈을 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그런 꿈을 말하고 공유하며 성취를 보여주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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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1
  • 봄의 넉두리 “추억”
    사람은 누구나 기억 속에 산다. 지나간 날들을 떠 올리는 것을 추억이라 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희망, 꿈, 비전이라고 한다. 추운 기운이 가시고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겨우내 외롭게 서 있던 나무 가지에는 움이 트고, 땅은 더욱 짙은 냄새를 뿜고 있다. 봄이 되면 봄꽃이 만발하고 여기 저기 봄의 축제로 들떠 있어 풍요롭기 까지 하다. 예전처럼 나물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여기 저기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을 찾아 땅을 헤집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각박한 현실 속에, 봄의 향취를 느낄 만한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지는 듯해 애석하기 그지없다. 요즘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여기 저기 앉아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기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걱정되는 것이 간혹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비극을 불러 오는 경우도 있다. 시대가 변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세대인 시니어들은 비록 초근목피하며 보릿고개를 넘기며 모두가 배고프고 불편하게 살았지만 그런대로 계절의 운치를 느끼며 살았던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며 감사하다. 누가 먼저 말했듯이 추억은 노래와 같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슬프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우리의 일부다. 우리는 그것을 잊을 수 없다. 추억은 또한 책과 같다. 수많은 경험에 의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과거는 우리에게 선물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누구인지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요즘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추억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도 가족여행, 또는 추억 만들기 한다고 하면 학교에서도 아무런 제제 없이 보내준다고 한다. 좋은 추억은 생각하고 떠 올리면 웃음이 나고, 즐겁지만 아픈 기억이나 좋지 않은 기억들은 하면 할수록 괴롭고 힘들다. 그런데 좋은 기억들은 잘도 사라지는데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려 해도 주머니의 바늘처럼 수시로 기회만 주어지면 비집고 나온다. 기독교인인 나는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기억하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기독교인의 추억은 나름대로 송구영신 예배로부터 시작해서 사순절, 고난주간, 세족식, 세례식과 성찬식, 부활절,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산상기도회,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가을 문학의 밤, 성탄절 망년회등 다양한 행사들이 줄지어 있어 많은 추억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신앙생활을 돕는 힘이 된다고 본다. 좋은 추억들은 우리의 정신세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건전한 추억들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자신의 삶을 더욱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게 한다. 과거는 미래을 위한 교훈이라도도 한다. 그런데 추억은 강과 같아서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순간,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모두 추억으로 남게 되지만 뒤 돌아보면, 때로 기뻤던 추억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슬픈 기억이 지혜를 주기도 한다.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좋지만 매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좋은 추억은 기분 좋아서 행복하고, 불행한 기억은 지나 간 것이니 이 역시 추억일 뿐이리라. 그러므로 하루하루 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을 개발하며, 서로를 배려하며, 이해와 양보, 사랑하며 산다면 그것이 가장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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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2
  • 칭찬이 격려가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다. 켄 블렌차드의 베스트셀러다. 그는 플로리다의 '시월드'에서 고래 쇼를 보았다고 한다. 전혀 춤을 출 것 같지 않던 고래가 춤을 추는 것이다. 고래는 춤을 출 수 있는 구조로 생기지 않았다. 머리는 둥그렇고 앞지느러미는 짧고 꼬리는 중심잡기도 힘들게 돼있다. 그런데 그런 고래가 춤을 춘다. 어떻게 고래가 춤을 추는지 조련사에게 물었다. 조련사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행동을 하면 충분히 칭찬해주고 고등어 한 마리를 준다. 그것을 반복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것이다. 블렌차드의 지론에 의하면 춤출 구조로 생기지 않은 고래가 춤출 수 있다면 인간을 춤추게 만드는 것은 아주 쉽다. 사람을 춤추게 만드는 것은 고래를 춤추게 만드는 것의 10%의 힘으로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칭찬을 통해서 주변을 모두 춤추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칭찬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위력이 있다. 칭찬은 격려가 되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어릴 때 골목대장으로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사고를 치는 사고뭉치 아이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우려의 목소리로 “저거 커서 뭐가 되려나, 불량배 두목밖에 더 되겠나” 이 소리를 들은 맥아더는 상처를 받고 실족해 집에 들어와 있었다. 그 때 그의 할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주며 “사람들이 너를 몰라서 그래, 너는 앞으로 큰 군인이 될 기질이 있어!” 이 한마디의 할머니의 격려가 그를 세계적인 유언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칭찬이 이렇게 좋은 데 우리가 칭찬을 잘 하지 못하며, 칭찬이 어려운 이유는 칭찬이 체질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칭찬을 안 하면 안하는 습관이 생기고, 반변에 칭찬이 습관화 되면 칭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은 대체로 지적을 많이 한다. 인간은 지적을 받으면 소극적이고 방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칭찬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상사에게 칭찬을 받아본 사람이 상사를 칭찬할 수 있다. 반면에 지적을 받으면 부하 역시 상사를 지적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다만 힘이 없으니까 대 놓고 면전에서는 드러나게 못하고 속으로, 혹은 뒷담화로 할 뿐이다. 물론 잘못이 있으면 지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적이 칭찬을 수반한 지적일 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작은 칭찬이 모아지면 놀라운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작은 시골 교회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던 한 소년이 실수로 제단의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화가 난 신부는 소년의 뺨을 때리며 “다시는 제단 앞에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 후 그 소년은 장성하여 공산주의 지도자인 유고슬라비아 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다른 도시의 교회에서 한 소년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때 신부는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위호를 해 주었다. 그 소년은 장성하여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쉬”가 되었다. 지금 나의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나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입술은 칭찬하고 격려하는 입술을 갖고 있나? 아니면 정죄하고 지적하고 비난하는 입술을 달고 사는가? 김 명 기(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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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사람이 두 번 살수 있다면...
    “사람이 두 번 살 수 있다면” 이란 말은 사람은 인류의 바람일 뿐 두 번 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한 번뿐인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영유해야 한다는 교훈과 같은 말이라고 본다. 버나드 쇼가 그의 묘비에 쓸 글귀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쓸 것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들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이 “늙어 갈수록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 말이 실감하게 한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생이라는 것을 전제로 살면서도 우리는 세월을 낭비하며 살 때가 많다. 사람들의 고통은 다양하지만 크게 추려보면 5가지로 볼 수 있다. 1) 건강과 질병의 문제 2) 물질과 경제 문제, 3)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문제 4) 일과 사업의 문제 5) 전염병과 대기 오염과 같은 환경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들과 싸우면서 살다 보면 희로애락을 겪으며 생로병사의 시간표를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인생살이를 위하여 생각해 본다면, 먼저 살다간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어 참고하며 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들이 먼저 살면서 시행착오를 통하여 깨닫고 말하는 체험적인 사실들이니까 참고해 봄직도 하다. 그러고는 후회가 없는 삶을 살려면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을 하려면 설계를 잘 해야 아름답고 삶을 행복하게 하는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인생도 닥치는 대로 막 살지 않고 큰 목표와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최선을 다하는 삶을 꼽을 수 있겠다. 미루는 삶이 나중을 후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개인별 성향과 기질탓도 있겠지만 성공적인 생을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부잣집에 주인이 낮잠을 청하고 있는데 도둑이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인 왈 “담을 넘어오기만 해봐”, 도둑은 담을 넘어 방문을 열려고 한다. 이때 또 “방문을 열기만 해봐” 도둑은 방문을 열고 장롱을 뒤지며 패물을 챙겼다. 주인 왈 “가져가기만 해봐” 도둑을 챙겨서 담을 넘는다. 주인이 하는 말 “다음에 또 오기만 해봐”이랬다는 것이다. 우습지만 게으름과 미룸에 대한 교훈적이라 본다. 마지막으로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다면, 인류에게 희소식이 아닌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살면서 내세에 대해서 준비하면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미국에서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 150명을 조사해 보았는데 공통되게 말하는 것이 3가지 있는데 1) 육체이탈 즉 자신의 몸에서 자신이 나와서 죽은 자신을 보았다는 것. 2) 그러고는 어딘가로 빨려가 듯이 가게 된다는 것이고, 3) 먼저 죽은 부모나 형제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구구팔팔이니 100세 시대니 하지만 결국 죽음을 이긴 사람은 없다.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면 이 또한 얼마나 소망이 있는가 그런가 하면 죽음 너머의 세계를 준비하며 사는 것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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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1
  • 감사의 신비
    코로나19와 싸우다 보니 세월이 빨리도 가는 것 같다. 벌써 다음 달 10일이 추석인가 보다. 추석은 중추절·가배·가위·한가위라고도 한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豐農祭)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감사'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인사,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다. 'thank'라는 단어로 보면 '생각, 마음, 태도'와 뉴앙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감사는 모든 상황과 관계를 편안하고 여유롭게 한다. 상대방이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 기분이 좋고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 식사 후 아내에게 감사하다 는 말을 해 보라. 아내는 보람을 느끼며, 다음 식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원망과 불평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감사도 습관이며, 노력해야 하며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감사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예들이 많다. 그러므로 챨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의 감사의 십계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것에 감사하면 큰 감사 거리를 만나게 된다. 3. 자신에게 감사하라.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높은 산과 태양과 별들을 보고 감탄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 일상생활에 대해 감사하라. 숨을 쉬거나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관심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감사가 일상에 대한 감사이다. 5. 문제에 대해 감사하라. 문제에는 항상 해결책도 있게 마련이다. 6. 더불어 감사하라. 장작은 함께 쌓여 있을 때 더 잘 타는 법이다. 가족끼리 감사를 나누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온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결과를 보고 감사하는 것보다 문제 앞에서 드리는 감사가 아름답다. 8. 잠들기 전에 감사하라. 대부분의 사람이 짜증과 걱정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전에 하는 감사는 영혼을 청소하는 것이다. 9.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에는 메아리 효과 있다.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이루어진다. 10. 모든 것에 감사하라. 당신의 삶에서 은혜와 감사가 아닌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 빛을 주신다. 감사의 가속과 증폭을 위해 본인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감사의 노트를 쓰기 운동을 하고 있다. 쓰는 양식은 매일 일기처럼 쓴 다. 쓰는 관점 즉 방식은 1) 적어도 남아 있 는 것을 보고, 2)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 보고, 3) 그냥 지나칠 일들을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여 보고, 3) 좋은 쪽으로 긍정하며 보는 방식이다. 일기 형식인데 쓰기 시작해 보니 감사할 일들이 참 많은데 감사하지 못하고 지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크고 작은 감사할 것들이 세세하게 많은 것을 감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감사한 것들을 찾다 보니 감사할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성경 딤전4:4에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감사할 때 자신의 정서가 더 강건하고 풍성해지며,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해지며, 고통 스러운 순간에도 이겨낼 긍정의 마음이 생긴다. 감사하는 것은 배움으로가 아닌 깨달음으로 되는 것이고 마음 먹기에 달려있으므로 우리 모두 이 풍성한 가을! 결실의 계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더 행복하시길 빌어본다. 감사합니다! 김영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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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코로나19로 힘든 때에 더위와 태풍과 폭우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아직도 재난을 당한 지역은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에 힘을 쓰고 있을 지금, 조석으로는 제법 쌀쌀한 가을을 맞이하게 됐다. 울고 웃다 보니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훅 지나가는 것 같다. 세월은 이렇게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한다. 성경에 보면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 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라고 모세가 노래했다. 주변을 둘러 보면 그렇게 푸르던 나뭇잎이 서서히 노랗게 변해가고, 잎사귀에 가려있던 호박이 둥그렇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시장에는 햇과일과 햇곡식들이 진열되어 있고, 들과 산에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과일과 곡식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봄과 여름철에 땀흘려 수고한 농부들에게 보람을 안겨 주는 것은 풍성한 결실일 것이다. 이 열매는 심여지고 가꿔져서 충실한 알곡과 열매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옛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고,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 없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직한 자연에서 배워야 하는데 오늘날도 불로소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핸드폰에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자들로 돈 벌수 있으니 투자를 하라고 유혹하고 있다. “긴급 문자”, “급히 알립니다”해서 보면 적은 투자로 짧은 시간에 일확천금을 얻게 해 주겠다고 쉴 새 없이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보면 심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가져다주는 땅의 정직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옛날 히브리 시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라며 노래했다. 인생도 농사와 같다. 자식을 양육한 부모님에 대해서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을 심어서 미래를, 수고와 땀을 심어 내일의 번영과 안락한 삶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 발명왕, 전구를 발명한 사람 등 수식이 다양합니다. 1847년 2월 11일 출생한 에디슨은(Thomas Alva Edison) 1931년 10월 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으로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1093개의 특허를 가지기까지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일화에는 2399번의 실패를 거쳐 2400번 만에 전류를 통해도 타지 않고 빛을 내는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에디슨은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실패란 성공을 위한 한 과정일 뿐이다. 농사는 먼저 어디에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심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심어야 하며 결실을 위해 뜨거운 태양볕을 견디며 추운 폭풍 한설을 이기며 결실만을 생각하는 것 이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생의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다가오는 많은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인내로서 참고 견디며 실패를 거듭하며 포기하지 않는 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세운 목표에 반드시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내용인 즉,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코 로나19도 확진자가 점점 줄고 있고, 계절도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로 가고 있다. 지금 일손을 잠시 놓고 계족산이나 갑천변이라도 걸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의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지금 잘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실패와 쓰라린 기억들은 잊어버리고, 더 나은 미래의 결실을 위하여 새로운 꿈과 비전을 키워 봄이 어떠하실지...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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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 열정 있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특별한 일들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꿈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으로 노력한 이들의 산물이다. 이들의 특징은 목표를 정했으면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극복하고 포기하지 않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열정을 지닌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뉴욕에 어떤 청년이 있었다. 그는 뉴욕의 동쪽 강을 넘어 가로질러, 브르클린에서부터 맨해튼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가 공중에 매어다는 다리(현수교)를 놓겠다고 했을 때에 사람들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하며 모두 반대를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확신과 주장으로 얼마간의 지지자들을 구했고 드디어 다리 공사를 착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불행한 일이 발생했고, 그 사고로 인해 그가 평생을 걸을 수 없는 불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아파트에 갇혀 사는 몸이 되었으나 다리 공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현장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자기의 아파트에서 멀리 다리 공사의 현장을 망원경으로 공사 진행 상황을 일일이 바라보며 매일 자기 아들을 지휘했다. 드디어 유명한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는 착공한지 14년 만인 1883년에 끈질긴 건축가, 열정을 품은 존 로우블링(John A. Roebling)과 그의 아들 워싱턴 로우블링(Washington Roebling)에 의해 준공이 되었던 것이다. 이 다리는 맨해튼 로어 이스트의 뉴욕 시청공원(City Hall Park)과 이스트강(East River) 건너 브루클린 하이츠를 잇는 이 다리로 길이 1833.7m, 너비 25.9m, 높이(주탑) 82.9m 에 달하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이다. 다리 가운데 네오고딕양식의 두 개의 주탑이 우뚝 서 있으며 여기에 수없이 많은 강철 케이블이 연결되어 다리를 지탱해 준다. 1903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으며, 한때 세계 건축물 중 8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 다리는 불구자가 된 존 로우블링씨가 처음에 꿈꾸고 계획했던 모습대로 완성이 되었다. 포기 할 줄 모르는 열정과 집념이 이룬 결과이다. 열정 하면 에디슨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14년 12월, 에디슨의 실험실은 화재로 사실상 전소되었다. 67세의 나이에, 그간의 에디슨의 거의 모든 작업들은 화염 속에 다 타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에디슨은 폐허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앙도 가치가 있구먼. 내 모든 실패들이 날아가 버렸으니…. 새로 시작하게 해주신 신이여 감사합니다” 화재 후 3주 만에 에디슨은 그의 첫 번째 축음기를 선보였다. 성경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을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가 자신의 원수에 대한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었다. 이 과부는 재판관을 찾아가 계속해서 재판을 통해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재판관이 무시했지만 계속해서 간청을 하니까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목표를 정했으면 끈기 있게 매달려 끝장을 보아야 뭐라도 이루는 것이다. 요즈음은 큰 인물들이나 큰 획기적인 문명의 이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모두가 열정이 식어져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은 갖고 싶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목표와 이유가 사명으로 있어야 한다. 생명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열정이 생기게 되는데 요즈음은 생명을 걸 수 있는 절대적 가치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도 누군가는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열정을 품고 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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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 단풍 구경은 다녀오셨습니까?
    세상이 어수선하고 복잡해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해마다 이맘때 쯤에는 단풍 구경이 한창이다. 단풍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부터 남쪽으로 물들어 간다. 죽은 것만 같았던 앙상한 모습의 가지로 추 운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 삐죽이 새 을 내밀다가 점점 자라 여름 아주 푸르고 푸른 신록을 자랑하며,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싱그러움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나뭇잎의 효과다. 그런 잎이 노랗게, 혹은 붉게 색깔이 변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정취를 맛보게 하며 서서히 나무를 떠날 준비를 한다. 단풍은 가을에 나뭇잎의 색상이 변하는 현상. 가을철 잎이 떨어지기 전에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되어 엽록소에 의해 가려져 있던 색소들이 나타나거나, 잎이 시들면서 잎 속에 있던 물질들이 그때까지 잎 속에 없던 색소로 바뀌기 때문에 일어난다. 상태로 말하면 잎이 붉게 물드는 것만을 특별히 단풍이라 하기도 하는데, 붉은색 단풍은 잎 속에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만들어 지기 때문에 나타난다. 안토시아닌은 잎 속의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 때 비로소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또한 날씨가 아주 맑고 공기 중에 물기가 적으며, 싸늘해질 때쯤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햇빛이 많을 때 더 많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구름 낀 날이 많은 가을에는 단풍이 잘 들지 않는다. 안토시아닌은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설탕과 같은 물질들이 바뀌면서 만들어진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기 전, 잎자루에는 떨켜가 만들어지고, 이 떨켜에 의해 잎에서 만들어진 설탕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고 잎 속에 쌓이기 때문에 설탕이 안토시아닌으로 바뀌어 단풍이 들게 된다. ]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해에 물드는 단풍은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서 기온이 천천히 내려가는 해에는 매우 아름다 운단풍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추워지면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이 되어 떨어져 버린다. 보통 하루 평균기온이 15℃(최저기온 7℃)일 때부터 나타나며 우리나라는 설악·오대산에서 시작해서 하루에 약 25㎞씩 남쪽으로 내려오고, 산에서는 약 40m씩 산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설악산과 오대산의 높은 지대에서 9월 하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해 10월 상순에는 치악산과 소백산, 10월 중순에는 중부의 속리·월악·계룡·주왕산과 남부의 지리산 높은 곳, 10월 하순에는 중부의 북한산과 남부의 내장산, 가야산, 지리산의 낮은 곳, 11월 상순에는 남해안 지방의 두륜산과 한라산까지 단풍이 들게 된다. 내륙 지방은 바닷가에 가까운 지방보다 10일 정도 빨리 물이 든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뒤 약 보름이 지나면 절정에 이른다. 떨어지는 낙엽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다. 낙엽의 계절에는 고인이 된 차중락씨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란 노래가 많이 들려진다.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렸더니...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 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애잔하고 서글프다. 보는 이들이 자신의 처지와 연관해서 생각하기 나름이었으리라. 의미를 부여해 본다면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가지를 떠나지만 땅에 떨어져 나무의 뿌리를 덮어 보온해 주고, 또 썩어 나무에 거름을 제공하며 나무에 다시 기운으로 자리 잡아 그 나무의 생명에 스며든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도 나무의 일생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찬란했던 삶은 자녀들을 위한 노력이고 자녀들의 살게 해 주시고는 조용히 낙엽처럼 자신을 거름으로 주어 자녀들을 쭉쭉 자라게 하고는 자녀의 곁을 떠나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순서를 밟는 것이 생명의 순환 원리인 것이리라. 그 자녀가 자라 또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를 꽃피우며 생명의 순환을 계속 이루어 갈 것이다. 단풍이 지기 전에 구경 한번 다녀오시는 것이 어떠실지요? 김 명 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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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요즘 재미있게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김태희작 정대윤연출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청률 21%를 넘기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하여 인생 2회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다. 우리 나라 현재 재벌들을 떠올리며 이것은 누구다, 저것은 누구다, 실제 인물을 떠올리며 흥미있게 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매스컴이나 드라마를 통해 개방된 정보시대에 걸맞게 누구나 재벌들의 실제의 삶을 거의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연속극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고 본다. 서로가 자신인양 착각하고 좋아하는 배우나 역할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양심과 도덕에 의해 비난과 저주를 마음껏 퍼붓기도 한다. 이미 극작가의 대본대로 방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도... 그런데 극작가의 생각이 우리 모두의 바램이나 막연한 상상을 현실로 그려본 것이기에 더욱 실감나고 흥미로운 것 같다. 우리가 간혹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너를 찾아와서 반드시 갚아 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고 한 번 죽으면 이 땅에서의 삶은 끝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사실-진리이다.(히9:27) 그러므로 극중 등장인물 중에 순양의 머슴처럼, 충견처럼 일해 온 윤현우(송준기)는 해외 은닉재산을 찾으러 갔다가 찾은 돈은 순양가의 또 다른 충견에게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다. 주인공이 벌써 죽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시간은 역으로 흘러 윤현유는 순양가의 진양철의 막내 손자 진도준(송준기)로 다시 태어난다. 대부분 윤회설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에 다 시 환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드라마는 시간을 반대로 돌려서 미래에 살았던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좀 특이하기는 하나 연속극이므로 상상이 가능하다고 보며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때부터 복수를 위해 순양가를 자신(진도준)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나간다. 그런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있으므로 매사에 유리해서 미리미리 대처할 수 있었고, 순양가의 사람들은 진도준이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며 관심을 갖게 되고, 할아버지 진양철도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막아낸 일을 계기로 막내 손자 진도준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할아버지와의 퀴즈에서 정답을 맞춘 상으로 분당 땅 오만 평을 상으로 받게 되어 단번에 수백억을 벌게 되었다. 이것을 다 달러로 바꿔서 투자해서 엄청난 재산을 형성하게 되고 여기서 한 재미교포 오세현(박혁권)을 만나 함께 하며 미러클 투자회사를 설립해서 함께 운영하며 재산을 불려가며 순양가의 재산을 하나씩 하나씩 차지해 간다. 조마조마하며 긴장하게 하지만 일어났던 일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스릴있게, 그리고 재치있게 헤쳐 나가는 모습에 통쾌하여 박수를 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그림이 그려지면서도 흥미 롭고 재미가 있다. 왜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열광할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미래에서 올수도, 과거에서 올 수도 없는 존재로, 미래를 꿈꾸며, 예측하며, 현재 즉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이 오늘이 과거로 발자국처럼 남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점쟁이들을 찾아다니고, 수퍼 컴퓨터를 동원하기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예언과 성취로 되어있다. 예언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져 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유명한 인물들은 성경을 가까이 했고 성경에서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시119:98에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라고 노래했으며,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성경없이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느냐?" 라 했고, 아 브라함 링컨도 “사람이 훌륭하게 살다가, 보람있게 죽으려면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시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미래를 예측하는 성경은 물론 많은 서적과 자료들을 참고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살펴보며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며 꿈과 비전을 품고 보다 나은 세계로 나가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모두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길... 김 명 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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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실시간 5분칼럼 굿포유 기사

  • 무엇이 중헌디
    무엇이 중헌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인생에 있어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건강, 돈, 명예 아닐까? 그래서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도 생겼다. 돈, 명예, 건강은 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건강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을 망치는 원인은 마음이다. 성경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그 어느 민족보다 강하고 담대한 것은 보장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칼슨이 쓴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에서 그도 사소한 것에 매여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 말고 잊을 것을 잊고 버릴 것을 버리고,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을 대범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의 큰 흐름은 토니 로빈스가 썼던 책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알프레드 아들러의 '인생의 지지 않을 용기'와도 흐름이 비슷하다. 생각 바꾸기를 통해서 감정을 전환시키고 쓸데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막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기본은 급한 것부터 하기 보다는 중요한 것부터 하는 습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이 누구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당신 자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마음의 평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떤 상황에든 남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행복과 타인, 주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 자신을 몹시 짜증 나게 하는 존재가 있을 때, 잠시 눈을 감고 그 사람이 귀여운 어린 아기라고 상상해 보자. 그들의 가냘픈 모습과 순순하고 귀여운 눈망울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얄미운 사람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다면 이번에는 그 얄미운 사람이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가엾은 노인이라고 상상해 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며 매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분이 저조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말하라. "이것도 그냥 지나갈 거야. 지난번에도 그랬어 결국은 좋게 될거야" 그렇게 하고 긍정하고 소망을 갖어 본다.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인생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새롭게 다짐한다. 모든 것에 신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다루기 힘든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 일이 제대로 마음먹은 대로 성사되지 않을 때 이 영적인 사실을 떠올려 보라. 마음이 안정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깊고 넓어질 것이다. “무엇이 중헌디~”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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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6-10
  • 꿈은 이루어진다.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유명한 찰리 패덕이 어느 날 클리블랜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연설중에 학생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강당 안에 미래의 올림픽 챔피언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자. 연설이 끝난 뒤 바싹 마르고 키가 껑충한 흑인 소년이 쭈삣거리며 찰리 패덕에게 다가 왔다. 한눈에 봐도 숫기가 없고 가난한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찰리 패덕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아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육상 챔피언이 될 수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요!” 라고, 찰리는 기대에 찬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할 수 있고 말고! 네가 챔피언을 목표로 삼고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다면 너는 분명히 올림픽에서 챔피언이 될 수 있단다!” 1936년 뮌헨 올림픽에서 그 소년은 세계 기록을 갱신하고 금메달을 땄다. 그가 바로 제시 오웬즈다. 꿈은 꾸어야 이루어진다. 꿈을 잉태하면 꿈이 현실로 태어나는 것이다. 꿈을 꾸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게 된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는 사람은 적다. 그 이유는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도 아버지와 어머니, 11형제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함으로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에 복이 임했는데 호사다마처럼 성폭행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 간다. 그곳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므로 인정을 받았다. 그후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고 대책까지 말한 그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으로 인정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훗날 그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러 와서 그에게 절하며 인사했다. 꿈은 큰 꿈을 꿔야 하며, 모두가 선호하고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바람직하다. 자신만의 망상이 되면 오히려 성취되어도 꼴불견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홍익인간의 자세로 모두를 이롭게 할 장본인이 될 것을 꿈으로 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또 한사람이 떠 오르는데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비가 새는 통나무 집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어머니에게 받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을 했다. 어느 날 아버지와 길을 걷다가 흑인이 백인에게 죽도록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흑인은 왜 저렇게 짐승처럼 맞아야 합니까?” 아버지 왈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저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법을 바꾸면 된다.” “법은 누가 바꿀 수 있어요?” “대통령은 바꿀 수 있다.” 이 말에 링컨은 “그럼 제가 대통령이 되어 이 좋지 않은 법을 바꾸겠습니다.” 이렇게 뜻을 정하고 그때부터 미 상원의원, 하원의원 선거에 나가 계속 낙선을 거듭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가 드디어 꿈꾸었던 미합중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끈기와 집념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낙심하면 때가 오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가 유익한, 모두를 유익하게 할 꿈을 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그런 꿈을 말하고 공유하며 성취를 보여주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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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5-01
  • 봄의 넉두리 “추억”
    사람은 누구나 기억 속에 산다. 지나간 날들을 떠 올리는 것을 추억이라 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희망, 꿈, 비전이라고 한다. 추운 기운이 가시고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겨우내 외롭게 서 있던 나무 가지에는 움이 트고, 땅은 더욱 짙은 냄새를 뿜고 있다. 봄이 되면 봄꽃이 만발하고 여기 저기 봄의 축제로 들떠 있어 풍요롭기 까지 하다. 예전처럼 나물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여기 저기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을 찾아 땅을 헤집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각박한 현실 속에, 봄의 향취를 느낄 만한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지는 듯해 애석하기 그지없다. 요즘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여기 저기 앉아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기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걱정되는 것이 간혹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비극을 불러 오는 경우도 있다. 시대가 변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세대인 시니어들은 비록 초근목피하며 보릿고개를 넘기며 모두가 배고프고 불편하게 살았지만 그런대로 계절의 운치를 느끼며 살았던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며 감사하다. 누가 먼저 말했듯이 추억은 노래와 같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슬프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우리의 일부다. 우리는 그것을 잊을 수 없다. 추억은 또한 책과 같다. 수많은 경험에 의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과거는 우리에게 선물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누구인지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요즘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추억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도 가족여행, 또는 추억 만들기 한다고 하면 학교에서도 아무런 제제 없이 보내준다고 한다. 좋은 추억은 생각하고 떠 올리면 웃음이 나고, 즐겁지만 아픈 기억이나 좋지 않은 기억들은 하면 할수록 괴롭고 힘들다. 그런데 좋은 기억들은 잘도 사라지는데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려 해도 주머니의 바늘처럼 수시로 기회만 주어지면 비집고 나온다. 기독교인인 나는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기억하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기독교인의 추억은 나름대로 송구영신 예배로부터 시작해서 사순절, 고난주간, 세족식, 세례식과 성찬식, 부활절,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산상기도회,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가을 문학의 밤, 성탄절 망년회등 다양한 행사들이 줄지어 있어 많은 추억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신앙생활을 돕는 힘이 된다고 본다. 좋은 추억들은 우리의 정신세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건전한 추억들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자신의 삶을 더욱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게 한다. 과거는 미래을 위한 교훈이라도도 한다. 그런데 추억은 강과 같아서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순간,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모두 추억으로 남게 되지만 뒤 돌아보면, 때로 기뻤던 추억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슬픈 기억이 지혜를 주기도 한다.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좋지만 매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좋은 추억은 기분 좋아서 행복하고, 불행한 기억은 지나 간 것이니 이 역시 추억일 뿐이리라. 그러므로 하루하루 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을 개발하며, 서로를 배려하며, 이해와 양보, 사랑하며 산다면 그것이 가장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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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2
  • 칭찬이 격려가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다. 켄 블렌차드의 베스트셀러다. 그는 플로리다의 '시월드'에서 고래 쇼를 보았다고 한다. 전혀 춤을 출 것 같지 않던 고래가 춤을 추는 것이다. 고래는 춤을 출 수 있는 구조로 생기지 않았다. 머리는 둥그렇고 앞지느러미는 짧고 꼬리는 중심잡기도 힘들게 돼있다. 그런데 그런 고래가 춤을 춘다. 어떻게 고래가 춤을 추는지 조련사에게 물었다. 조련사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행동을 하면 충분히 칭찬해주고 고등어 한 마리를 준다. 그것을 반복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것이다. 블렌차드의 지론에 의하면 춤출 구조로 생기지 않은 고래가 춤출 수 있다면 인간을 춤추게 만드는 것은 아주 쉽다. 사람을 춤추게 만드는 것은 고래를 춤추게 만드는 것의 10%의 힘으로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칭찬을 통해서 주변을 모두 춤추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칭찬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위력이 있다. 칭찬은 격려가 되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어릴 때 골목대장으로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사고를 치는 사고뭉치 아이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우려의 목소리로 “저거 커서 뭐가 되려나, 불량배 두목밖에 더 되겠나” 이 소리를 들은 맥아더는 상처를 받고 실족해 집에 들어와 있었다. 그 때 그의 할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주며 “사람들이 너를 몰라서 그래, 너는 앞으로 큰 군인이 될 기질이 있어!” 이 한마디의 할머니의 격려가 그를 세계적인 유언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칭찬이 이렇게 좋은 데 우리가 칭찬을 잘 하지 못하며, 칭찬이 어려운 이유는 칭찬이 체질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칭찬을 안 하면 안하는 습관이 생기고, 반변에 칭찬이 습관화 되면 칭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은 대체로 지적을 많이 한다. 인간은 지적을 받으면 소극적이고 방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칭찬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상사에게 칭찬을 받아본 사람이 상사를 칭찬할 수 있다. 반면에 지적을 받으면 부하 역시 상사를 지적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다만 힘이 없으니까 대 놓고 면전에서는 드러나게 못하고 속으로, 혹은 뒷담화로 할 뿐이다. 물론 잘못이 있으면 지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적이 칭찬을 수반한 지적일 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작은 칭찬이 모아지면 놀라운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작은 시골 교회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던 한 소년이 실수로 제단의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화가 난 신부는 소년의 뺨을 때리며 “다시는 제단 앞에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 후 그 소년은 장성하여 공산주의 지도자인 유고슬라비아 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다른 도시의 교회에서 한 소년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때 신부는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위호를 해 주었다. 그 소년은 장성하여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쉬”가 되었다. 지금 나의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나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입술은 칭찬하고 격려하는 입술을 갖고 있나? 아니면 정죄하고 지적하고 비난하는 입술을 달고 사는가? 김 명 기(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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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사람이 두 번 살수 있다면...
    “사람이 두 번 살 수 있다면” 이란 말은 사람은 인류의 바람일 뿐 두 번 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한 번뿐인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영유해야 한다는 교훈과 같은 말이라고 본다. 버나드 쇼가 그의 묘비에 쓸 글귀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쓸 것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들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이 “늙어 갈수록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 말이 실감하게 한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생이라는 것을 전제로 살면서도 우리는 세월을 낭비하며 살 때가 많다. 사람들의 고통은 다양하지만 크게 추려보면 5가지로 볼 수 있다. 1) 건강과 질병의 문제 2) 물질과 경제 문제, 3)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문제 4) 일과 사업의 문제 5) 전염병과 대기 오염과 같은 환경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들과 싸우면서 살다 보면 희로애락을 겪으며 생로병사의 시간표를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인생살이를 위하여 생각해 본다면, 먼저 살다간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어 참고하며 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들이 먼저 살면서 시행착오를 통하여 깨닫고 말하는 체험적인 사실들이니까 참고해 봄직도 하다. 그러고는 후회가 없는 삶을 살려면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을 하려면 설계를 잘 해야 아름답고 삶을 행복하게 하는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인생도 닥치는 대로 막 살지 않고 큰 목표와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최선을 다하는 삶을 꼽을 수 있겠다. 미루는 삶이 나중을 후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개인별 성향과 기질탓도 있겠지만 성공적인 생을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부잣집에 주인이 낮잠을 청하고 있는데 도둑이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인 왈 “담을 넘어오기만 해봐”, 도둑은 담을 넘어 방문을 열려고 한다. 이때 또 “방문을 열기만 해봐” 도둑은 방문을 열고 장롱을 뒤지며 패물을 챙겼다. 주인 왈 “가져가기만 해봐” 도둑을 챙겨서 담을 넘는다. 주인이 하는 말 “다음에 또 오기만 해봐”이랬다는 것이다. 우습지만 게으름과 미룸에 대한 교훈적이라 본다. 마지막으로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다면, 인류에게 희소식이 아닌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살면서 내세에 대해서 준비하면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미국에서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 150명을 조사해 보았는데 공통되게 말하는 것이 3가지 있는데 1) 육체이탈 즉 자신의 몸에서 자신이 나와서 죽은 자신을 보았다는 것. 2) 그러고는 어딘가로 빨려가 듯이 가게 된다는 것이고, 3) 먼저 죽은 부모나 형제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구구팔팔이니 100세 시대니 하지만 결국 죽음을 이긴 사람은 없다.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면 이 또한 얼마나 소망이 있는가 그런가 하면 죽음 너머의 세계를 준비하며 사는 것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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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1
  • 감사의 신비
    코로나19와 싸우다 보니 세월이 빨리도 가는 것 같다. 벌써 다음 달 10일이 추석인가 보다. 추석은 중추절·가배·가위·한가위라고도 한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豐農祭)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감사'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인사,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다. 'thank'라는 단어로 보면 '생각, 마음, 태도'와 뉴앙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감사는 모든 상황과 관계를 편안하고 여유롭게 한다. 상대방이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 기분이 좋고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 식사 후 아내에게 감사하다 는 말을 해 보라. 아내는 보람을 느끼며, 다음 식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원망과 불평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감사도 습관이며, 노력해야 하며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감사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예들이 많다. 그러므로 챨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의 감사의 십계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것에 감사하면 큰 감사 거리를 만나게 된다. 3. 자신에게 감사하라.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높은 산과 태양과 별들을 보고 감탄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 일상생활에 대해 감사하라. 숨을 쉬거나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관심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감사가 일상에 대한 감사이다. 5. 문제에 대해 감사하라. 문제에는 항상 해결책도 있게 마련이다. 6. 더불어 감사하라. 장작은 함께 쌓여 있을 때 더 잘 타는 법이다. 가족끼리 감사를 나누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온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결과를 보고 감사하는 것보다 문제 앞에서 드리는 감사가 아름답다. 8. 잠들기 전에 감사하라. 대부분의 사람이 짜증과 걱정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전에 하는 감사는 영혼을 청소하는 것이다. 9.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에는 메아리 효과 있다.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이루어진다. 10. 모든 것에 감사하라. 당신의 삶에서 은혜와 감사가 아닌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 빛을 주신다. 감사의 가속과 증폭을 위해 본인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감사의 노트를 쓰기 운동을 하고 있다. 쓰는 양식은 매일 일기처럼 쓴 다. 쓰는 관점 즉 방식은 1) 적어도 남아 있 는 것을 보고, 2)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 보고, 3) 그냥 지나칠 일들을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여 보고, 3) 좋은 쪽으로 긍정하며 보는 방식이다. 일기 형식인데 쓰기 시작해 보니 감사할 일들이 참 많은데 감사하지 못하고 지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크고 작은 감사할 것들이 세세하게 많은 것을 감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감사한 것들을 찾다 보니 감사할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성경 딤전4:4에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감사할 때 자신의 정서가 더 강건하고 풍성해지며,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해지며, 고통 스러운 순간에도 이겨낼 긍정의 마음이 생긴다. 감사하는 것은 배움으로가 아닌 깨달음으로 되는 것이고 마음 먹기에 달려있으므로 우리 모두 이 풍성한 가을! 결실의 계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더 행복하시길 빌어본다. 감사합니다! 김영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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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코로나19로 힘든 때에 더위와 태풍과 폭우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아직도 재난을 당한 지역은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에 힘을 쓰고 있을 지금, 조석으로는 제법 쌀쌀한 가을을 맞이하게 됐다. 울고 웃다 보니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훅 지나가는 것 같다. 세월은 이렇게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한다. 성경에 보면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 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라고 모세가 노래했다. 주변을 둘러 보면 그렇게 푸르던 나뭇잎이 서서히 노랗게 변해가고, 잎사귀에 가려있던 호박이 둥그렇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시장에는 햇과일과 햇곡식들이 진열되어 있고, 들과 산에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과일과 곡식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봄과 여름철에 땀흘려 수고한 농부들에게 보람을 안겨 주는 것은 풍성한 결실일 것이다. 이 열매는 심여지고 가꿔져서 충실한 알곡과 열매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옛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고,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 없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직한 자연에서 배워야 하는데 오늘날도 불로소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핸드폰에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자들로 돈 벌수 있으니 투자를 하라고 유혹하고 있다. “긴급 문자”, “급히 알립니다”해서 보면 적은 투자로 짧은 시간에 일확천금을 얻게 해 주겠다고 쉴 새 없이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보면 심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가져다주는 땅의 정직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옛날 히브리 시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라며 노래했다. 인생도 농사와 같다. 자식을 양육한 부모님에 대해서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을 심어서 미래를, 수고와 땀을 심어 내일의 번영과 안락한 삶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 발명왕, 전구를 발명한 사람 등 수식이 다양합니다. 1847년 2월 11일 출생한 에디슨은(Thomas Alva Edison) 1931년 10월 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으로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1093개의 특허를 가지기까지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일화에는 2399번의 실패를 거쳐 2400번 만에 전류를 통해도 타지 않고 빛을 내는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에디슨은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실패란 성공을 위한 한 과정일 뿐이다. 농사는 먼저 어디에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심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심어야 하며 결실을 위해 뜨거운 태양볕을 견디며 추운 폭풍 한설을 이기며 결실만을 생각하는 것 이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생의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다가오는 많은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인내로서 참고 견디며 실패를 거듭하며 포기하지 않는 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세운 목표에 반드시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내용인 즉,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코 로나19도 확진자가 점점 줄고 있고, 계절도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로 가고 있다. 지금 일손을 잠시 놓고 계족산이나 갑천변이라도 걸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의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지금 잘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실패와 쓰라린 기억들은 잊어버리고, 더 나은 미래의 결실을 위하여 새로운 꿈과 비전을 키워 봄이 어떠하실지...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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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1
  • 열정 있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특별한 일들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꿈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으로 노력한 이들의 산물이다. 이들의 특징은 목표를 정했으면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극복하고 포기하지 않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열정을 지닌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뉴욕에 어떤 청년이 있었다. 그는 뉴욕의 동쪽 강을 넘어 가로질러, 브르클린에서부터 맨해튼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가 공중에 매어다는 다리(현수교)를 놓겠다고 했을 때에 사람들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하며 모두 반대를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확신과 주장으로 얼마간의 지지자들을 구했고 드디어 다리 공사를 착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불행한 일이 발생했고, 그 사고로 인해 그가 평생을 걸을 수 없는 불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아파트에 갇혀 사는 몸이 되었으나 다리 공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현장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자기의 아파트에서 멀리 다리 공사의 현장을 망원경으로 공사 진행 상황을 일일이 바라보며 매일 자기 아들을 지휘했다. 드디어 유명한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는 착공한지 14년 만인 1883년에 끈질긴 건축가, 열정을 품은 존 로우블링(John A. Roebling)과 그의 아들 워싱턴 로우블링(Washington Roebling)에 의해 준공이 되었던 것이다. 이 다리는 맨해튼 로어 이스트의 뉴욕 시청공원(City Hall Park)과 이스트강(East River) 건너 브루클린 하이츠를 잇는 이 다리로 길이 1833.7m, 너비 25.9m, 높이(주탑) 82.9m 에 달하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이다. 다리 가운데 네오고딕양식의 두 개의 주탑이 우뚝 서 있으며 여기에 수없이 많은 강철 케이블이 연결되어 다리를 지탱해 준다. 1903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으며, 한때 세계 건축물 중 8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 다리는 불구자가 된 존 로우블링씨가 처음에 꿈꾸고 계획했던 모습대로 완성이 되었다. 포기 할 줄 모르는 열정과 집념이 이룬 결과이다. 열정 하면 에디슨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14년 12월, 에디슨의 실험실은 화재로 사실상 전소되었다. 67세의 나이에, 그간의 에디슨의 거의 모든 작업들은 화염 속에 다 타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에디슨은 폐허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앙도 가치가 있구먼. 내 모든 실패들이 날아가 버렸으니…. 새로 시작하게 해주신 신이여 감사합니다” 화재 후 3주 만에 에디슨은 그의 첫 번째 축음기를 선보였다. 성경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을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가 자신의 원수에 대한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었다. 이 과부는 재판관을 찾아가 계속해서 재판을 통해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재판관이 무시했지만 계속해서 간청을 하니까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목표를 정했으면 끈기 있게 매달려 끝장을 보아야 뭐라도 이루는 것이다. 요즈음은 큰 인물들이나 큰 획기적인 문명의 이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모두가 열정이 식어져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은 갖고 싶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목표와 이유가 사명으로 있어야 한다. 생명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열정이 생기게 되는데 요즈음은 생명을 걸 수 있는 절대적 가치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도 누군가는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열정을 품고 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명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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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1
  • 단풍 구경은 다녀오셨습니까?
    세상이 어수선하고 복잡해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해마다 이맘때 쯤에는 단풍 구경이 한창이다. 단풍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부터 남쪽으로 물들어 간다. 죽은 것만 같았던 앙상한 모습의 가지로 추 운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 삐죽이 새 을 내밀다가 점점 자라 여름 아주 푸르고 푸른 신록을 자랑하며,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싱그러움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나뭇잎의 효과다. 그런 잎이 노랗게, 혹은 붉게 색깔이 변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정취를 맛보게 하며 서서히 나무를 떠날 준비를 한다. 단풍은 가을에 나뭇잎의 색상이 변하는 현상. 가을철 잎이 떨어지기 전에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되어 엽록소에 의해 가려져 있던 색소들이 나타나거나, 잎이 시들면서 잎 속에 있던 물질들이 그때까지 잎 속에 없던 색소로 바뀌기 때문에 일어난다. 상태로 말하면 잎이 붉게 물드는 것만을 특별히 단풍이라 하기도 하는데, 붉은색 단풍은 잎 속에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만들어 지기 때문에 나타난다. 안토시아닌은 잎 속의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 때 비로소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또한 날씨가 아주 맑고 공기 중에 물기가 적으며, 싸늘해질 때쯤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햇빛이 많을 때 더 많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구름 낀 날이 많은 가을에는 단풍이 잘 들지 않는다. 안토시아닌은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설탕과 같은 물질들이 바뀌면서 만들어진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기 전, 잎자루에는 떨켜가 만들어지고, 이 떨켜에 의해 잎에서 만들어진 설탕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고 잎 속에 쌓이기 때문에 설탕이 안토시아닌으로 바뀌어 단풍이 들게 된다. ]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해에 물드는 단풍은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서 기온이 천천히 내려가는 해에는 매우 아름다 운단풍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추워지면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이 되어 떨어져 버린다. 보통 하루 평균기온이 15℃(최저기온 7℃)일 때부터 나타나며 우리나라는 설악·오대산에서 시작해서 하루에 약 25㎞씩 남쪽으로 내려오고, 산에서는 약 40m씩 산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설악산과 오대산의 높은 지대에서 9월 하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해 10월 상순에는 치악산과 소백산, 10월 중순에는 중부의 속리·월악·계룡·주왕산과 남부의 지리산 높은 곳, 10월 하순에는 중부의 북한산과 남부의 내장산, 가야산, 지리산의 낮은 곳, 11월 상순에는 남해안 지방의 두륜산과 한라산까지 단풍이 들게 된다. 내륙 지방은 바닷가에 가까운 지방보다 10일 정도 빨리 물이 든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뒤 약 보름이 지나면 절정에 이른다. 떨어지는 낙엽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다. 낙엽의 계절에는 고인이 된 차중락씨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란 노래가 많이 들려진다.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렸더니...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 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애잔하고 서글프다. 보는 이들이 자신의 처지와 연관해서 생각하기 나름이었으리라. 의미를 부여해 본다면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가지를 떠나지만 땅에 떨어져 나무의 뿌리를 덮어 보온해 주고, 또 썩어 나무에 거름을 제공하며 나무에 다시 기운으로 자리 잡아 그 나무의 생명에 스며든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도 나무의 일생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찬란했던 삶은 자녀들을 위한 노력이고 자녀들의 살게 해 주시고는 조용히 낙엽처럼 자신을 거름으로 주어 자녀들을 쭉쭉 자라게 하고는 자녀의 곁을 떠나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순서를 밟는 것이 생명의 순환 원리인 것이리라. 그 자녀가 자라 또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를 꽃피우며 생명의 순환을 계속 이루어 갈 것이다. 단풍이 지기 전에 구경 한번 다녀오시는 것이 어떠실지요? 김 명 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 오피니언
    • 5분칼럼 굿포유
    2024-02-21
  •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요즘 재미있게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김태희작 정대윤연출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청률 21%를 넘기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하여 인생 2회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다. 우리 나라 현재 재벌들을 떠올리며 이것은 누구다, 저것은 누구다, 실제 인물을 떠올리며 흥미있게 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매스컴이나 드라마를 통해 개방된 정보시대에 걸맞게 누구나 재벌들의 실제의 삶을 거의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연속극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고 본다. 서로가 자신인양 착각하고 좋아하는 배우나 역할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양심과 도덕에 의해 비난과 저주를 마음껏 퍼붓기도 한다. 이미 극작가의 대본대로 방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도... 그런데 극작가의 생각이 우리 모두의 바램이나 막연한 상상을 현실로 그려본 것이기에 더욱 실감나고 흥미로운 것 같다. 우리가 간혹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너를 찾아와서 반드시 갚아 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고 한 번 죽으면 이 땅에서의 삶은 끝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사실-진리이다.(히9:27) 그러므로 극중 등장인물 중에 순양의 머슴처럼, 충견처럼 일해 온 윤현우(송준기)는 해외 은닉재산을 찾으러 갔다가 찾은 돈은 순양가의 또 다른 충견에게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다. 주인공이 벌써 죽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시간은 역으로 흘러 윤현유는 순양가의 진양철의 막내 손자 진도준(송준기)로 다시 태어난다. 대부분 윤회설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에 다 시 환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드라마는 시간을 반대로 돌려서 미래에 살았던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좀 특이하기는 하나 연속극이므로 상상이 가능하다고 보며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때부터 복수를 위해 순양가를 자신(진도준)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나간다. 그런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있으므로 매사에 유리해서 미리미리 대처할 수 있었고, 순양가의 사람들은 진도준이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며 관심을 갖게 되고, 할아버지 진양철도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막아낸 일을 계기로 막내 손자 진도준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할아버지와의 퀴즈에서 정답을 맞춘 상으로 분당 땅 오만 평을 상으로 받게 되어 단번에 수백억을 벌게 되었다. 이것을 다 달러로 바꿔서 투자해서 엄청난 재산을 형성하게 되고 여기서 한 재미교포 오세현(박혁권)을 만나 함께 하며 미러클 투자회사를 설립해서 함께 운영하며 재산을 불려가며 순양가의 재산을 하나씩 하나씩 차지해 간다. 조마조마하며 긴장하게 하지만 일어났던 일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스릴있게, 그리고 재치있게 헤쳐 나가는 모습에 통쾌하여 박수를 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그림이 그려지면서도 흥미 롭고 재미가 있다. 왜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열광할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미래에서 올수도, 과거에서 올 수도 없는 존재로, 미래를 꿈꾸며, 예측하며, 현재 즉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이 오늘이 과거로 발자국처럼 남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점쟁이들을 찾아다니고, 수퍼 컴퓨터를 동원하기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예언과 성취로 되어있다. 예언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져 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유명한 인물들은 성경을 가까이 했고 성경에서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시119:98에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라고 노래했으며,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성경없이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느냐?" 라 했고, 아 브라함 링컨도 “사람이 훌륭하게 살다가, 보람있게 죽으려면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시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미래를 예측하는 성경은 물론 많은 서적과 자료들을 참고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살펴보며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며 꿈과 비전을 품고 보다 나은 세계로 나가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모두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길... 김 명 기 신대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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