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 작전을 내릴 때 수하 장수들이 반대를 하여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한바다 위에서 전쟁 결과 한 번도 지지를 안 했다. 완벽한 승리를 가져왔다. 23번 아나 치른 해전 패배 없이 다 이겼다. 가장 유명한 해전은 한산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이다 전쟁시 장수가 지략을 가진다고 이기는 것이 아님을 인식했다. 바다의 특징을 완벽히 알고 있기에 승리를 한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을 한다면 바다를 가지고 놀았다고 본다. 바다의 특징 해류의 성질 바람의 방향 등등 해양 전문가 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군님은 전문적으로 해양과학을 공부한 것이도 아니었다. 잠재적인 재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한산해전의 학익진 전법과 명량에서의 승전이다. 한산해전은 학익진 전술을 이용하여 왜선 60여 척을 격침시켰다. 이 결과로 완전 해양을 장악했고 일본군이 본국으로부터 물자 수송을 막았다. 역사학자들은 한산대첩이 임진왜란을 종결시킨 싸움이라고 한다. 학익진 전법은 일본 함선이 한산도 앞바다로 들어오면 아군 함선을 좌우로 펴지게 하여 적군 배가 들어오게 유인하여 격침시키는 전법이다. 완전 항법적인 원리이다.
명량대첩 승리 단지 작전과 지형 정신만 가지고 이겼을까 아니다!!! 아군 13척만으로 왜선 133척을 어떻게 격침 시켰을까 “속담에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조금의 문틈만 있어도 그 사이로 바람이 세게 들어온다는 것을 표현한 말인데, 좁은 틈에서는 유체의 속력이 빨라진다는 베르누이의 정리를 나타낸 것이다.
명량대첩에서 승리할 때도 베르누이의 정리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명량(울돌목)은 수로가 좁아 물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곳이다. 수로가 좁기 때문에 생기는 빠른 물살을 이용하였고 세계 해전사에서도
거북선 발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장군께서는 공학에 재주가 있어 가능한 것이다. 탁월한 전문가인 나대용의 도움으로 성공을 한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 장군께선 거북선을 만들고 정부 고관 벼슬아치를 불러 진수식을 보여주었는데 실패했다. 그들은 장군을 비난했다. 그러나 장군은 굴하지 않고 거북선을 만드셨고 해전 승리에 커다란 기여를 하셨다. 최종 정리를 한다면 장군께선 물리학자요 해양학자요 조선기술자이시다.
장군은 문학에도 조예가 깊으셨다. 전시 중에도 불구하시고 난중일기를 쓰셨고 국보 76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전 달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기록으로, 친필 초고가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본래 이 일기에는 어떤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후 1795년(정조 19)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편찬하면서 편찬자가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전서 권 5부터 권 8에 걸쳐서 이 일기를 수록한 뒤로, 사람들은 이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나도 오래전 난중일기 일부분을 읽어보았다.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시조 1수가 전한다. 한산 섬 달 빍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장군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지방 원님으로 있었을 때 모든 일에 원칙적으로 처리했고 청렴하였다. 비록 본인보다 급이 높은 벼슬아치들이 부정한 행위를 할 경우나 부정청탁할 경우 절대 굴하지 안 했고 원리원칙대로 처리하였다.
4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1545년생으로 올해로 480돌이다. 충무공 이순신. 정말로 하늘이 주신 분이시다.
초등학생부터 배웠던 장군의 업적과 정신 다시 한 변 새기면서 진정한 삶으로 살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