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0(월)
 
  • 외로운 도시의 섬, 대화동에 나타난 등대 같은 “카페 누엘” 그녀는 왜 대화동에서 디져트 카페를 차렸을까?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픈 대화동

대화동의 대화는 큰대(大) 벼화(禾)의 대화 낟알이 많이 달린 큰 벼를 의미한다.

대전천과 갑천이 연해 있어 땅이 비옥한 탓에 농사가 잘 되는 지역색이 담긴 이름이다.

대화동 꼭대기에 서서 산업단지를 바라보며 과거의 드넓었던 논밭과 친구 마냥 곁에서 어깨를 두른 금강줄기, 스미듯 뻗어 들어온 낮은 산까지 그려보니 참으로 아름다웠을 마을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제 대화동는 대할대(對) 이야기화(話) 마주보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마을로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있는 마을로 거듭나는 대화동을 방문하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아직도 7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정겹고도 빈곤한 삶이 보이는 대화동은 어린시절이 생각나서 좋다.

어디를 가도 턱턱 막히는 고층아파트가 보이지 않아 좋고 동화속에나 나올 법한 커다란 지붕의 아기자기한 집이 또 좋다.

거기다 자전거 한 대도 겨우 들어갈 듯한 좁은 골목을 걷노라면 걸음마 하는 아기를 볼 때처럼 입꼬리가 올라간다.

특히나 당연히 길이 있을 것 같은 곳이 막다른 골목으로 막혔을 때,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숨은 듯 귀여운 꼬부랑길이 나타날 때, 이런 순간은 반전의 맛도 있다.

대화동에 스무 번쯤 방문 했을 때 카페 누엘을 처음 봤다.

평소 다니던 길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 때문에 묘하게 이 곳을 비껴 다녔다.

재개발을 앞두고 공가와 폐가가 속출 하는 제3개발 지역 앞에 버젓이 섰다.

다들 가게를 비우고 이사를 가는 곳에 자리한 깔 쌈한 카페다

 

손님 대부분이 친구인 30대 초반의 카페 누엘 사장님 신라미

라미라는 계이름 처럼 뭔가 신나는 표정, 목소리가 처음 보는 사람마저 들뜨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녀는 대화동에서 태어났고 대화동에서 성장해 결혼했으며 지금은 배우자와 두 자녀를 두고 대화동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그야말로 대화동 토박이며 앞으로도 이 곳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

친정부모님 또한 곁에 살고 있으니 대화동은 추억의 장소 뿐 아니라 든든한 울타리기도 하다.

공가와 폐가가 100가구 이상 속출하고 중심가의 상점도 모두 문을 닫은 황량한 대화동에 피어나는 나팔꽃 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온 동네가 놀이터였던 나의 마을

어릴 때는 온 동네가 놀이터였어요.

학교 끝나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친구들 과 놀았고 집에 갈 시간도 잊어서 아버지가 장대를 가지고 쫓아온 적도 많았어요.

비가 오면 저기 저 지붕위 동그란 구멍에서 굵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놀던 기억도 선해요.

장화를 신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 줄기 소리 듣는 게 무척 재밌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카페 정면으로 보이는 작은 지붕의 빗물수로관을 가리킨다.

아마 재개발되면 없어질 집이겠죠.

그러면 저의 어린시절 추억도 사라질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대화동이 늘 이 모습이길 바라지는 않아요.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조화롭게 진행되길 바랄 뿐입니다.

부모님은 대화동에서 세탁업을 하시며 저희 삼남매를 키웠어요.

근면한 부모님은 늘 열심히 일하셨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죠.

매일 엄마한테 100원만 달라고 어지간히 졸라 댔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부자가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동네에서 비교 대상도 없었고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덕분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가서 다른 동네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처음으로 저희와 다른 부자친구를 봤죠.

그래도 부럽다기보다 이렇게 사는 친구도 있구나 했던 것 같아요.

서른이 넘은 그녀에게 어찌 인생의 아픔이 없었겠냐 마는 과거를 회상하는 신라미 대표의 표정은 마치 한번도 불행한 적 없었 던 것 같은 모습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 밝은 빛이고 싶어

대화동에 살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만날 때 갈 수 있는 카페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어요.

언제나 은행동이나 둔산동, 한남대까지 나가야 했죠.

그 때 처음으로 대화동의 열악함을 생각하게 됐고 이를 내가 해결해 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화동에서 나고 자랐기에 지인도 많았고 동네 특색도 잘 알고 있었기에 도전해 볼 만 했습니다.

폐가가 늘고 있는 재개발 지역과 인접했지만 문제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어둡고 황량한 곳을 저희 카페 누엘이 환히 밝혀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손님이자 친구인 마을사람들에게 가로등도 없는 거리에 밝은 불을 밝히는 카페가 생겨서 너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 선택이 옳았다는 걸 알았죠.

누엘은 카페이지만 이 동네의 밝은 빛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최고의 디져트 카페라는 자부심으로

어릴 때부터 빵을 유난히 좋아했고 만드는 것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때는 토스트를 만들어서 반 친구들에게 판 적도 있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아셔서 길게 하진 못했지만 빵을 만들고 파는 일이 참 재밌었어요.

오래전부터 베이킹을 해 왔기에 카페를 오픈 한다고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었죠.

다만 더 좋은 맛을 내기위해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적어도 은행동 둔산동 디져트 카페 안 부럽게 최고의 맛을 내고 싶어 재료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커피 또한 큐글레이더(커피감별사)에게 직접 관리 받고 있어 맛에 큰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런 소규모 카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제 친동생이 큐글레이더라 특혜를 입고 있습니다.

대화동에서 커피나 베이킹 배우고 싶은 어린이와 성인을 위해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 중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아이의 어린 시절이길

대화동에서 살았던 유년기 초,중,고,청년기 가 모두 행복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밖에서 들려오는 대화동에 선입견은 오히려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요.

차만 한 대 있으면 대화동은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어디든 접근성이 좋고 집값도 싸고 아이들이 크면 다닐 수 있는 학교도 코 앞입니다.

주민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종교시설이 많다는 것도 커다란 이점입니다.

평일은 카페에서 어린이들에게 베이킹을 가르치며 돈을 벌기도 하지만 일요일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도 하고 아이들 돌보는 봉사도 합니다.

동네에서 쉽게 마주치는 아이들이 제 제자인 셈이죠.

저의 어린시절이 행복했던 것처럼 마을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합니다.

대화동을 수십차례 방문하며 마을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니, 선명하게 두 그룹으로 나눠진다.

암울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울감에 사로잡힌 장애인, 노인, 이주민도 쉽게 만난다.

그러나 신라미 대표처럼 대화동에 추억이 있고 그 곳에서 미래를 꿈꾸며 탄탄한 뿌리를 내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제 곧 대화동은 옛모습이 사라지고 더 많은 사람이 떠날 것이며 더 많은 새로운 사람이 빈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대화동의 든든한 지키미를 자청하며 대화동속에서 살아가는 일을 축복으로 알고 사는 몇 사람이 있다면 그들로 인해 대화동은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들의 마을로 거듭날 것이다.

변화와 보존의 경계를 잘 지키며 새롭게 탄생할 대화동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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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속에 피어나는 나팔꽃 같은 신라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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