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적으로만 남은 들말 토산당터와 예술로 승화한 들말 두레소리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서쪽 담장을 끼 고 뒤쪽으로 걸어 가다보면 그 끝자락과 이어지며 작고 허술한 공장건물들이 난립해 있는 공장지대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공장건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얽힌 길을 따라 또 얼마를 더 헤매다보면 도시 녹지 조성의 규정에 따라 플라타너스 나무를 심어놓은 숲이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숲이 끝나는 지점쯤에서 ‘들말토산당터’라고 쓰여있는 작은 표지석 을 만나게 된다.
표지석에는 ‘장마철이면 들말에 홍수가 빈번하여 17세기경 마을사람들은 이곳 인근에 토산을 쌓고 건물을 세워 피신처로 삼았다. 토산 쌓기 모습이 전해지고 있는 들말 두레 소리는 1996년 전국민속예 술경연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 12월 시 무형문화제 13호로 지정되었다’라고 적혀있다.
표지석 앞에서 잠시 물속에 집과 전답이 모두 잠긴 채 피신을 나온 이들이, 한순간에 바다로 변해 누런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들을 바라보는 망연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공포와 절망이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 작은 표지석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토산의 규모나 모양이 어떠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또한 이 땅의 농민들이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이뤄냈던 삶의 흔적이 이토록 삭막한 공장지대 안에 방치 된 모습은 너무 처량하고 애달파 보인다.
들말(행정지명 문평동)은 갑천 물길이 금강의 본류와 합쳐져 북쪽으로 흐르는 지점에 형성된 드넓은 들의 한가운데 자리한 마을이다.
덕분에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농수의 혜택을 누리지만, 잦은 홍수 피해를 피할 수없는 숙명으로 지고 살아 가야만 했던 것이다.
토산은 강물이 범람해 들어올 때 피난처로 쓰기 위해 흙을 쌓아올려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산인 것 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봄이면 장마에 깎기고 세월이 마모시킨 토산으로 모여 구성진 소리에 맞춰 흙을 져 나르고 힘껏 땅을 다져 토산을 다시 복구하고 정성을 다해 하늘에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강물이 마을과 들을 집어삼킬 때면 귀중한 가재도구와 식량을 챙겨 토산으로 모여들 수 있었고, 평소에는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큰일을 치르는 마을의 중심터전이 되어주었다.
1980년대 초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홍수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얼마안가 그들의 터전이었던 문평리는 산업단지로 지정되어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삶터인 목상동으로 옮겨왔고, 그곳에서도 오래된 전통 문화인 ‘대전들말두레소리’를 계속 전수해 왔다.
그리고 표지석에 적시했듯이 1996년 전국 민속예술공연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덕분에 그들 마음속 토산의 모습이었을 건물을 지어 ‘들말두레전수회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치열한 행위들이 문화와 예술이 되는 것은 그 곡진한 염원과 정결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가능해진 것이리라.
‘대전들말두레소리’가 무형유산으 로 지정되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1세대 보유자들이 점차 세상을 뜨고 새로운 전수자를 키워내야만 하는 시점에서 2020년 8월에 두레소리 보유자로 지정된 문병주씨는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성심을 다해 한 가지씩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포부를 털어놓았다.
* 자료제공 및 인터뷰 : 문병주, 사진제 공 : 박기선, 참고서적 : 로컬매거진 『 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