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09(금)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는 아홉 남매 가운데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런데 김호연재 10세 때(1690) 어머니 이옥재가, 16세 때(1696) 아버지 김성달이 세상을 떠났다. 김호연재는 오빠와 언니들의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소녀 시절을 보냈다.

김호연재의 큰 오라버니 김시택(金時澤, 1660~1713)은 남매 중 일곱째인 김시흡이 21세의 나이로 요절하고(1699), 이명세에게 시집간 첫째 여동생도 죽자(1702), 부모와 형제들의 잇따른 죽음에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시택은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자형나무를 주제로 한시와 시조로 창작하였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화답시를 짓도록 요청하는 한편, 동생들이 이미 지어놓은 한시작품들도 모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남매의 시집이 聯珠錄(연주록)이다.

자형나무꽃.png

 

다음은 자형나무 시의 창작배경에 얽힌 김시택의 글이다. 

북정에 자형나무를 심은 지 20여 년이 되었는데, 형제들이 매번 그 아래에 나아가서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요즘 우리 형제들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이고 흩어진 한이 있으나, 꽃만은 스스로 이전과 변함이 없으니 슬픈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드디어 시조 한 수를 완성하고 이어서 절구시를 지었다. 이를 나란히 기록하여 여러 아우들에게 보여주었다.(北庭紫荊樹, 種來二十餘年, 兄弟每就其下, 遊歌以娛矣. 比者, 吾兄弟有存沒聚散之恨, 而花自如旧, 不勝感愴. 遂成一歌, 仍倚爲絶句, 並錄示諸弟.)”

다음은 김시택의 시조와 한시이다.

틀가에 자형나무.jpg


<자형>

<紫荊(자형)>

 

뜰 가에 처음 자형 나무 심은 것은

형제들의 화락을 꽃과 함께 기약함이지.

생사 이별에 쓸쓸함은 깊어만 가고

봄바람에 꽃이 피니 사람을 슬프게 하네.

 

庭畔初栽紫荊枝(정반초재자형지)

弟兄湛樂與花期(제형담락여화기).

死別生離蕭索甚(사별생리소삭심).

春風花發使人悲(춘풍화발사인비).

 자형나무는 우리나라말로 박태기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인 4월 초 중순에 진보라 빛 꽃을 피운다. 그런데 집안에 박태기나무를 심는 뜻은 이 나무가 형제 우애를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중국 양()나라의 오균(吳均)이라는 사람이 지은 속제해기(續齊諧記)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전진(田眞) 삼 형제가 부모의 유산을 분배하면서, 정원에 심겨있는 자형나무 한 그루까지도 3등분하여 나누어 갖기로 하였다. 이튿날 나무를 쪼개려고 하니 도끼를 대기도 전에 나무가 말라 죽어있었다. 이러한 일을 목격한 전진의 형제들은 크게 뉘우치고, 사람이 나무만도 못한 짓을 하였다고 흐느껴 울었다. 형제가 감동하여 딴살림 차려 나갈 것을 철회하자, 그 자형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이다.

김호연재의 형제자매들은 뜰 가에 자형나무를 심어 놓고 그 꽃그늘 아래에서 놀며 형제 화목을 노래 부르곤 하였다. 김시택은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을 하직한 형제도 생기고, 또 혼인과 각각의 사연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으나, 오직 뜰 가의 자형만은 변함없이 정원을 지키며 피고 지는 것을 보고 형제들 생각에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래서 위의 평시조 한 수와 한시를 완성하여 여러 아우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김시택의 시조와 한시작품은 형제를 그리는 큰 오라버니의 애절함이 작품 속에 잘 녹아져 있다.

연주록에 화답시가 전해지는 사람은 이지평댁으로 불리는 첫째 딸(이명세 부인), 이연기댁으로 불리는 셋째 딸(이항수 부인), 송광주댁으로 불리는 넷째 딸 김호연재(송요화 부인)이다. 세 자매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연주록 자형나무 시조.png

김호연재의 큰언니(이명세 부인)

<자형시에 화답하여>

<紫荊絶句(화자형절구)>

 

봄바람은 한스럽게 자형의 가지에 들고

함께 즐기자던 옛 기약 헛되어졌다네.

꽃 아래 형제들 모이지 못하나니

생사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도다.

 

春風恨入紫荊枝(춘풍한입자형지)

湛樂空逮昔日期(담락공체석일기)

花下未成兄弟會(화하미성형제회)

生離死別不勝悲(생리사별불승비)

 

김호연재의 셋째언니(이항수 부인)

<큰오라버니의 자형시에 화답하여>

<和伯氏紫荊絶句次仲氏韻

(화백씨자형절구차중씨운>

 

옛 동산 자형의 가지에 봄이 드니

꽃은 의연히 피었으나 사람은 기약을 저버렸네.

죽은 사람 좇지 못하고 산 사람도 멀리 있으니

처음 뜻 생각하매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어라.

 

故園春入紫荊枝(고원춘입자형지)

花發依然人負期(화발의연인부기)

死者莫追生亦遠(사자막추생역원)

想來初意不堪悲(상래초의불감비)

 

김호연재(송요화 부인)

<자형시에 차운하여>

<次紫荊詩韻(차자형시운)>

 

멀리서 알겠노라, 북쪽 뜰의 자형 가지

해마다 꽃이 피어 기약이 있는 듯하네.

사별하고 남은 인생 나 또한 멀리 있으니

봄바람에 머리 돌리매 슬픔 절로 나는 것을.

 

遙知庭北紫荊枝(요지정북자형지)

花發年年似有期(화발년년사유기)

死別餘生吾亦遠(사별여생오역원)

春風回首自生悲(춘풍회수자생비)

김호연재의 형제자매들은 오두리 바닷가 고향집의 뜰에 심어있는 자형나무 한그루를 회억(回憶)하며 그 끈끈한 동기간의 정을 표현해 내었다. 형제자매들은 위의 시에서 우애 좋은 형제(兄弟湛樂)고향 뜰(庭畔庭北)옛 동산(故園)자형나무(紫荊)봄바람(春風)()시간의 흐름(年年)죽음과 이별(死別生離)공간적 거리감()저버린 기약(負期)한스러움()슬픔()’ 등의 시어로 각자 그 심연의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김호연재는 깊은 밤 잠 못 이룰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오두리 바닷가의 일렁이는 파도소리, 친정집 마당에 한가득히 울려 퍼졌던 그때 그 유년시절의 화목한 아홉 남매 웃음소리 환청으로 자신을 위로하곤 하였다.

 

 

문희순(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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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아홉 남매, 뜰 가에 자형(紫荊) 나무 심은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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