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연재 그녀는 누구인가? 다섯번째 이야
“아까워라 이내마음, 탕탕한 군자의 마음!”
300년 전 회덕 땅에 살았던 김호연재(1681~1722)는 ‘탕탕한 군자의 마음’을 지닌 자기 자신이 너무도 아깝다고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유학을 근본이념으로 한 조선사회에서 추구했던 가장 이상적 단계의 인간형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남성들조차도 자기 자신을 ‘군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군자지향(君子志向)’ 정도로 은근히 에둘러 표현하기가 일쑤였다.
넓고 광대한 군자의 기상을 지닌 김호연재. 그러나 자신의 역량과 욕망을 펼칠 사회적 여건이 아니었던 조선사회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김호연재는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슬퍼하였다. 밝은 달처럼, 맑고 맑은 물처럼, 깨끗하고 깨끗한 흰 구름처럼, 그녀의 정신세계는 높고 고결하였다. 화려하게 몸치장하고 남성의 사랑이나 기다리는 성정이 아니었기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더욱 슬퍼하였다.
그녀의 영혼은 속된 세상 사람들과 섞일 수 없었으므로 언제나 외톨이였다. 김호연재는 탕탕한 군자의 마음을 지니고도 다 펼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奈何無所爲]’라고 말하며, 통곡 또 통곡하였다. 그러한 마음을 노래한 시가 다음의 <자상(自傷)>이다.
<슬퍼서>
아까워라, 이내마음
탕탕한 군자의 마음.
겉과 속 숨김없으니
밝은 달이 흉금을 비추도다.
맑고 맑음은 흐르는 물과 같고
깨끗하고 깨끗함은 흰 구름 같아라.
화려한 사물 즐겨하지 않고
뜻은 구름과 물의 자취에 있도다.
속된 무리와 하나 되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 도리어 그르다 하네.
규방 여인의 몸 된 것 슬퍼하노니
창천은 가히 알지 못하리라.
아, 할 수 있는 일 그 무엇이랴!
다만 각각의 뜻 지킬 뿐이지.
<자상(自傷)>
可惜此吾心(가석차오심)
蕩蕩君子心(탕탕군자심)
表裏無一隱(표리무일은)
明月照胸襟(명월조흉금)
淸淸若流水(청청약유수)
潔潔似白雲(결결사백운)
不樂華麗物(불락화려물)
志在雲水痕(지재운수흔)
弗與俗徒合(불여속도합)
還爲世人非(환위세인비)
自傷閨女身(자상규녀신)
蒼天不可知(창천불가지)
奈何無所爲(내하무소위)
但能各守志(단능각수지)
김호연재는 그녀가 살았던 조선시대의 시대적 환경을 “뜻이 있어도 말하기 어렵고, 문필 있으나 감히 다하지 못한다네. 다만 홀로 소리를 삼켜 통곡하고, 흐르는 눈물에 옷깃을 적실 뿐(有志難言, 有文未敢. 秪獨呑聲, 有淚沾衣. <失題>)”이라고 읊었다. 김호연재는 당당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지적 자부심이 대단하였던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러나 녹녹치 않은 여성의 삶과 문학 환경, 시대의 절벽에 좌절하였다.
그리하여 “시와 술 뜻에 따라 맡기나니, 세상이 미치광이라 일컬어도 혐의치 않으리라(詩酒任隨意, 不嫌世稱狂. <閑情)>)!”라고 그 궁극의 아픔을 노래하였다.
<삼산군수에게 쌀을 빌리며>
호연당 위의 호연한 기상
사립문 위의 구름과 물, 호연함을 즐기네.
호연이 비록 즐거우나 곡식에서 나오는 법
삼산군수에게 쌀을 빌리니 이 또한 호연한 일일세.
<乞米三山守(걸미삼산수)>
浩然堂上浩然氣(호연당상호연기)
雲水柴門樂浩然(운수시문락호연)
浩然雖樂生於穀(호연수락생어곡)
乞米三山亦浩然(걸미삼산역호연)
김호연재는 쌀을 빌리면서도 이처럼 당당하고 의연하다. 일반 사람들은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한다. 생활, 곧 경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변함없는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호연재는 “가난은 선비의 떳떳한 도이다. 사람을 대할 때 덕(德)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의식(衣食)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하였다. 안빈낙도 · 안빈호학을 실천한 선비의 모습이다. 요즈음 우리네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배짱이, 풍요로운 정신세계가 아름답다.
<취하여>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안하구나.
고요히 자리 위에 누웠노라니
즐거움에 잠시 세상의 정 잊노라.
<醉作(취작)>
醉後乾坤濶(취후건곤활)
開心萬事平(개심만사평)
悄然臥席上(초연와석상)
唯樂暫忘情(유락잠망정)
<만음>
녹수는 콸콸 울타리 밖에 흐르고
청산은 은은히 난간 앞에 펼쳐있네.
공명은 다만 인간사 한바탕 꿈일 뿐
무엇을 구구하게 세상과 다투리오.
<謾吟(만음)>
綠水冷冷籬外在(녹수냉냉리외재)
靑山隱隱檻前生(청산은은함전생)
功名秪是黃梁夢(공명지시황량몽)
何事區區與世爭(하사구구여세쟁)
김호연재의 시집은 몇 종류가 있다. [오두추도(鰲頭追到)]·[호연재유고(浩然亝遺稿)]·[호연재시집(浩然齋詩集)]·[호연재유고(浩然齋遺稿)]·[호연ᄌᆡ유고] 등이다. 현전 총 작품 수는 250여수이다. 이러한 다양한 시집들의 존재는 김호연재의 한시가 송씨 가문에서 세대 간에 상당한 관심 속에 향유 · 유통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김호연재의 9세손 송용억이 1995년에 발간한 [호연재유고(浩然齋遺稿)]는 이러한 시집들을 정리하고, 여기에 [자경편], 부록으로 외손 김종최의 <사실기>, 아들 송익흠의 <유사>, 종질 송명흠의 <천장시제문>, 친정 조카 김겸행의 <제문> 2편, 사위 김치공의 <제문>, 김종최의 <제문> 2편, 김원행의 <소대헌공묘표> 등을 실어 발간하였다. 현재 김호연재 시작품의 전모는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제, 당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달게 받으며 “술을 마시고,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절규한 김호연재의 삶과 문학을 찾아 떠나야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