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景行錄에 云 坐密室을 如通衢하고 馭寸心을 如六馬하면 可免過이니라.
(경행록에 운 좌밀실을 여통구하고 어촌심을 여육마하면 가면과이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비밀스러운 방에 앉아 있더라도 네거리에 있는것같이 하고 한치의 마음 다스리기를 여섯 필의 말 다스리는 것같이 하면 가히 허물을 면하느니라.
衢(네거리 구) 懼(두려울 구) 馭(부릴 어)
坐密室(좌밀실): 아무도 보지 않는 밀실에 앉아 있어도
可免過(가면과): 허물을 면할 수 있다.
⊙ 擊壤詩에 云 富貴를 如將智力求인댄 仲尼年少合封侯니라.
世人은 不解靑天意하고 空使身心半夜愁이니라.
(격양시에 운 부귀를 여장지력구인댄 중니연소합봉후니라.
세인은 불해청천의하고 공사신심반야수이니라.)
격양시에 이르기를 만일 부하고 귀함을 지혜로 구할 수 있다면 공자께서도젊었을 때 제후에 봉해졌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푸른 하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연히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밤중에 근심하게 하니라.
擊(칠 격) 壤(흙 양) 詩(글 시) 尼(여승 니) 封(봉할 봉)
侯(제후 후): 요즘의 지방 자치 단체장 정도의 벼슬
解(풀 해) 使(하여금 사) 愁(근심 수)
合封侯(합봉후): 합당히 제후에 봉하여졌을 것이다.
半夜(반야): 한밤중
擊壤詩(격양시): 송나라 때 소옹이 엮은 격양집에 실려 있음
愁(근심 수): 秋+心=愁(회의문자)
仲(버금 중): 人+中=仲(형성문자)
⊙ 范忠宣公이 戒子弟 曰 人雖至愚나 責人則明하고 雖有聰明이나
恕己則昏이니 爾曹는 但當以責人之心으로 責己하고 恕己之心으로
恕人則不患不 到聖賢地位也이니라.
(범충선공이 계자제 왈 인수지우나 책인즉명하고 수유총명이나
서기즉혼이니 이조는 단당이책인지심으로 책기하고 서기지심으로
서인즉불환부 도성현지위야이니라.)
범충선공이 아들과 아우를 경계하여 가로되 사람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남을 꾸짖음에는 밝고 비록 총명함이 있으나 자신을 용서하는 데는 어두우니 너희들은 다만 마땅히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즉 성현의 지위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아니해도 되니라(즉 저절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
范(성 범) 雖(비록 수) 愚(근심 우) 爾(너 이)
聰(귀밝을 총) 聰明(총명)
聖(성인 성) 聖人(성인) 神聖(신성)
賢(어질 현) 賢人(현인) 賢明(현명) 聖賢(성현)
范忠宣公(범충선공): 북송 철종의 재상
但(다만 단): 人+旦(아침 단)=但(형성문자)
⊙ 施恩勿求報하고 與人勿追悔하라.
(시은물구보하고 여인물추회하라.)
은혜를 베풀었거든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를 쫓지 말라.
施(베풀 시) 忠(충성 충) 宣(베풀 선) 公(여러 공) 恩(은혜 은)
報(갚을 보, 알릴 보) 報償(보상) 報恩(보은) 報道(보도) 速報(속보)
追(쫓을 추) 追跡(추적) 追越(추월) 追憶(추억)
悔(뉘우칠 회) 後悔(후회) 悔恨(회한)
追悔(추회): 추후로 후회함
⊙ 念念要如臨戰日하고 心心常似過橋時이니라.
(염염요여임전일하고 심심상사과교시이니라.)
생각마다 중요한 것은 전쟁에 임하는 날같이 하고 마음마다 항상 다리를 지나는 때 같이 할 지니라. 생각은 늘 신중하고 조심하라는 뜻이다.
臨(임할 림) 戰(싸움 전) 過(지날 과) 橋(다리 교) 時(때 시)
⊙ 心不負人이면 面無慙色이니라.(심불부인이면 면무참색이니라.)
마음에 남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느니라.
負(질 부) 負擔(부담) 勝負(승부) 負債(부채) 慙(부끄러울 참)
負人(부인): 남을 저버림
⊙ 人無百歲人이나 枉作千年計이니라.(인무백세인이나 왕작천년계이니라.)
사람은 백 세까지 살지 못 하나 헛되이 천년의 계획을 세우느니라.
歲(해 세) 枉(굽을 왕, 헛될 왕) 計(셀 계, 꾀 계) 無(없을 무)
⊙ 寇萊公六悔銘에 云 官行私曲失時悔오 富不儉用貧時悔오
藝不少學過時悔오 見事不學用時悔오 醉後狂言醒時悔오
安不將息病時悔이니라.
(구래공육회명에 운 관행사곡실시회오 부불검용빈시회오
예불소학과시회오 견사불학용시회오 취후광언성시회오
안불장식병시회이니라.)
구래공육회명에 이르기를 관리가 부정한 행위를 행하면 지위를 잃었을 때 뉘우치고 부자가 검소하게 쓰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뉘우치고 재주를 젊었을 때 배우지 않으면 때가 지나서 뉘우치고 일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쓸 때 뉘우치고 술에 취하여 한 말은 깼을 때 뉘우치고 편안할 때 장차 쉬지 않으면 병이 든 뒤에 뉘우치느니라.
私曲(사곡): 不正(부정) 非行(비행):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비리를 저지름
失時悔(실시회): 벼슬을 잃었을 때 뉘우침
狂言(광언): 주책없는 말
寇萊公(구래공): 송나라의 재상
寇(도적 구) 萊(쑥 래)
悔(뉘우칠 회) 後悔(후회) 悔恨(회한)
藝(재주 예) 藝術(예술) 技藝(기예) 文藝(문예)
醉(취할 취) 醉客(취객) 滿醉(만취) 醉中(취중)
狂(미칠 광) 狂人(광인) 狂犬病(광견병) 醒(깰 성) 覺醒(각성)
銘(새길 명): 金+名(이름 명)=銘(형성문자)쇠에 글을 새겨 넣는다는 뜻
病(병 병): 病(형성문자)
貧(가난 빈): 分(나눌 분)음+貝(조개)뜻=貧 돈을 나누어 가지므로 가난해진다는 뜻
息(쉴 식): 自+心=息(회의문자) 자신이 편히 쉬면 마음이 편안하다.
⊙ 존심편 관련 이야기: <만덕의 은혜>
만덕의 성은 김씨인데, 탐라(제주도의 옛 이름) 어느 양가의 딸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기녀에게 의탁하여 살았다. 만덕이 성장하자 기생 명부에 이름을 올렸는데,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이고 관기로 부림을 당하였으나 그 스스로는 기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이 스물이 넘어 기생이 아니고 양민의 딸이라는 사실을 관청에 울며 호소하니, 관청에서 불쌍하게 생각하여 기생 명부에서 빼주고 다시 양민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만덕은 비록 민간에서 살게 되었으나 탐라의 사내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남편으로 맞이하지 않았다. 그녀는 재물을 늘리는 일에 뛰어났는데, 수시로 바뀌는 물건 가격에 맞추어 매매하여 몇십 년이 지나 상당한 재산가로 이름이 났다. 정조 대왕이 즉위한 지 19년이 되던 을묘년에 탐라에 큰 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의 시체가 쌓였다. 정조 대왕이 구휼미(가난한 사람과 이재민을 도와주는 쌀)를 실어 보낼 것을 명령하니, 팔백 리 먼 바닷길(한양에서 탐라까지)을 바람을 받은 돛단배가 왔다 갔다 하였으나, 때에 맞출 수는 없었다. 이에 만덕이 천금의 돈을 던져 뭍에서 쌀을 사니, 여러 고을의 사공들이 때에 맞게 이르렀다.
만덕은 그 십분의 일을 가지고서 친족들을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관청으로 보냈다. 부황(오래 굶어 살가죽이 붓고 누렇게 되는 병)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관청에 구름같이 몰려드니, 관청에서는 급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리어 나누어 주기를 차등 있게 하였다. 탐라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거리로 나와 만덕의 은혜를 칭송하며 “우리를 살린 사람은 만덕이다.”라고 하였다.
<양진과 왕밀>
중국 후한 때 사람 양진은 학식이 높아 ‘관서공자’라 일컬어졌으며, 벼슬이 태위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그가 형주자사가 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에 창읍을 지나게 되었다. 예전에 형주 사람으로서 학식이 있다는 왕밀이란 사람을 임금에게 추천하였는데, 바로 그 왕밀이 창읍의 현령으로 있었다. 왕밀은 밤에 황금 10근을 품속에 품고 와서 양진에게 바쳤다. 품속에서 꺼내 놓은 황금을 보며 양진이 말하였다.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모르는가?”
왕밀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양하지 마십시오. 늦은 밤이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양진이 말하였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하여 아는 이가 없다고 하는가!”
왕밀은 부끄러워 내빼듯 그 자리를 물러 나왔다.
<더불어 사는 삶>
조선 영조 때 조현명은 정직하고 깨끗하였으며 언행이 단정하고 공사가 분명하였다. 탕평책을 주장하여 어느 집단에 끼지도 않았다. 영의정으로 있을 때였다. 아내의 초상을 당하여 각 지방에서 많은 부조가 들어왔다. 초상을 치른 후 살림을 맡아 보던 집사가 잠시 한가한 때에
“남은 돈으로 땅을 사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상의해왔다. 조현명이 물었다.
“큰 아들의 뜻은 어떠했느냐?”
“예, 큰 아드님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조현명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혼자 마셨다.그리고 자식들을 불렀다. 자식들이 모두 모이자 큰 소리로 나무랐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부좃돈으로 땅을 사려하다니 어미의 송장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더욱이 나는재상이면서도 땅을 사지 않았는데 너희 같은 하찮은 것들이 굶어 죽을까 봐 걱정한다는 말이냐?”
이튿날이 되자, 그는 부조로 들어온 모든 재물을 가난한 일가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