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탄진은 나름대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신탄진이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땐 전매청(지금 KT&G)에서 파고다 아리랑 신탄진 은하수라는 이름 가진 담배들이 나왔다. 정부에서는 1965년 신탄진에 연초제조창(지금 KT&G)을 만들었고 상징적인 이름으로 정한 모양인 것 같다. 대전에 살면서 신탄진 지명소리를 많이 들었고 담배가계 보면 신탄진담배를 많이 보았고 담배심부름도 했으니 잊을수가 없다.
옛 지명은충남 대덕군 북면으로 불렸다가 1973년 7월1일자로 신탄진읍으로 바꾸었다. 그때 우리집에 전화국서 발행한 충청남도 전지역 전화번호부가 있었기에 즐겨보았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탄진 전화번호를 열심히 보았다. 전화번호는 국이없는 2자리와 3자리 였고, 석봉리에 사는 주민들만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한 곳만이 평촌리만 적혀있었고 연초제조창으로 기억하고 있다. 석봉리와 평촌리만 있고 다른 리는 없는 지역인가 생각했다.
대전에서 신탄진 가는 방법은 좌석버스였고 요금은 30원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요금 성인기분 15원인가 20원) 버스는 많지 않았다. 1973년 아버지는 이모부 친척의 도움으로 신탄진서 포도농사를 지으셨다. 어느날 나랑 동생이랑 함께 포도밭에 갔다. 남경마을 안으로 들어갔더니 드넓은 포도밭이 보였다. 지금은 주택 공장지대로 바뀌었다. (712번 버스 종첨)
남경마을 버스정류장 자리에서 신탄진역이 보이길래 걸어가보자고 하여 같이 걸어갔고 역 옆에 육교가 있어 올라갔다. 어느 할머니가 들고있는 짐을 같이 내려달라고 하여 도와주었다. 신탄진역안 철길을 바라보니 마침 화물열차가 지나가고있었다. 역무원 2명이 양쪽 폴랫포옴에 서서 깃발을 흔들었다. 동생은 어린 나이라 힘들어 했다.
포도밭으로 되돌아와서 동네아이들과 놀았고 해질 무렵 아버지는 식구들과 먹으라고 많은 포도를 따서 보자기에 담아주셨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아버지가 바래다 주었는데 원동시장에서 내려 보따리 들고 집까지 가느라 힘들었다. 이후로는 신탄진에 가질 않했다. 80년 통일호 열차타고 서울가는데 신탄진역에서 섰으며, 사람들이 제법 탔다. 신탄진에서도 통일호도 서는가 생각했다. 80년대 대청댐을 신탄진을 통해 여러번 갔지만 무관심했다.KT&G에서는 지금처럼 벚꽃 놀이를 했으며 2번 정도 가보았다
본격적으로 신탄진을 가게 된 계기는 인사발령 때문이었다. 2006년에 동구에서 살다가 법동으로 이사와 대덕구민이 되었고 2007년 1월1일자로 연기군 동면(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있는 중학교로 발령받았기에 신탄진을 거쳐가야했다. 신탄진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조치원가는 시내버스가 있었다. 아침 7시 55분 첫버스 타고 다녔다. 조치원 전의 연서지역에서 근무할땐 신탄진역서 기차타고 다녔다. 연기군이 2012년 7월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되어 충남지역으로 발령 않받아 퇴직할때까지 계속 신탄진을 거쳤다. 가끔 휴일에는신탄진 시장 로하스공원 수영장 대청댐 대청공원 신탄진공단 등등 친숙해지려고 다녔다.
퇴직 후 유튜버가 되어 신턴진의 다양한 볼거리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으며, 대덕마을신문명예기자가 되어 (구) 신탄진도서관에 가서 취재도 하였고 정보검색과 독서를 하고강좌도 들었다. 지금은새로 지은 석봉도서관이 대신하고 있다.
대덕구 주최로 신탄진서 하는대청호 고래축제와 기타 다양한 행사에 참가 하였다. 최근 대덕국민체육센터에서 새마을 지도자 대회 참석하였으며,새마을 유공자로 인정받아 구의장상을 받았으며 다양한 놀이와 함께 경품추첨을 잘하여 많은 상품을 받았다. 추억진행형이되어버린 신탄진 좋은 추억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