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7(금)
 

카멜리아의 숨결 


                               윤외기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운 첫새벽, 동트기 전의 푸르스름한 대기가 방 안의 온기를 시샘하듯 창문에 달라붙어 서슬 퍼런 성에를 그려놓았다. 누군가 밤새 유리창 캔버스 위에 정교하게 기하학적인 문양을 조각해 놓은 듯, 성에는 날카롭고도 서러운 빛으로 일렁였다. 나는 이중창을 열려다 말고, 손가락 끝으로 그 차가운 결정체를 살포시 눌러보았다. 체온에 닿아 녹아내리는 성에의 눈물 위로, 문득 기억 저편에 봉인해 두었던 붉은 낙인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영하의 고통 속에서도 홀로 온도를 올리며 그리움을 토해내던 마당 구석의 동백, 산다화(山茶花)였다. 남들은 봄의 화사함을 시샘하며 꽃망울을 틔울 때, 동백은 어찌하여 이 가혹한 계절을 택하여 자신의 생생한 심장을 꺼내 놓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꽃이 온기를 찾아 뿌리 깊은 곳으로 숨어들 때, 홀로 눈보라를 맞으며 붉은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은 차라리 처절한 선언에 가까웠다. 길섶에 머무는 노란 꽃술에는 내가 미처 다 읽어내지 못한, 깊고 깊은 기억들이 눅진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기억의 실타래를 풀면 그 끝에는 늘 어머니가 서 계셨고, 남도의 바닷가에 겨울이면 칼바람이 문창지를 뚫고 들어오던 그 집 마당에는 커다란 동백나무 한 그루가 파수꾼처럼 서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동백은 꽃이라기보다 공포에 가까운 놀라움이고, 하얀 눈 위에 툭툭 떨어져 있는 붉은 꽃송이들은 마치 누군가 흘린 선혈처럼 섬뜩했다. 


어머니는 그 떨어진 꽃송이들을 정갈하게 모아 장독대 위에 올려두곤 하셨다. "동백은 두 번 핀단다.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어머니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리 없던 철부지 아들은 그저 붉은 꽃잎을 짓이기며 놀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동백은 뼛속까지 아린 생의 뒤안길에서 머뭇거리던 어머니의 젊은 날, 그 슬픈 사랑의 기록이었을지도 모른다. 


풍파를 견디며 붉은 눈물을 안으로 삼키던 여인의 일생이 저 꽃의 채도 속에 녹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등은 겨울 동백잎처럼 거칠었고, 찬물에 빨래하고 돌아온 어머니의 손마디가 붉게 부어오를 때면, 마당의 동백도 함께 붉어졌다. 고통을 견디는 것들의 색깔은 왜 이토록 닮아 있는 것인지, 나는 창가에 서서 이제는 곁에 없는 어머니의 굽은 등과, 그 위로 쏟아지던 겨울 햇살을 동백의 빛깔로 치환해 본다. 


깊어 가는 겨울밤, 어둠을 하얗게 덧칠하며 내려앉는 눈꽃 송이들은 차갑지만 다정하다. 그 눈송이들이 동백의 붉은 뺨에 닿을 때, 비로소 카멜리아라는 이름의 애타는 사랑은 송골송골 영그는 뭇별들의 이야기 속으로 편입된다. 동백의 학명인 카멜리아를 발음할 때면 혀끝에서 서늘한 금속성의 맛과 함께 달콤한 향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나는 그 애잔한 풍경에 초대받은 유일한 손님이 되어 가만히 읊조려 본다. 세상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고백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외침이라기보다, 긴 세월을 버텨온 자신의 영혼이 건네는 지독한 위로에 가깝다. 


동백의 빨간 심장 속에는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만남의 환희가 있고, 또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열정을 토해내야만 하는 형벌 같은 고통이 공존한다. 그것은 멈춤 속의 고요함이자,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의 하얀 버선발 위에 소복소복 쌓여가는 절규 없는 헌신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아낌없이 던져 상대의 발밑을 채워주는 것임을, 동백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해거름이 찾아오면 창가에 맺힌 성에의 눈물 위로 노을이 번지고, 시간의 흐름은 야속하게도 디딤돌 위에 떨어진 꽃잎들을 쓸어간다. 하지만 동백의 낙화는 패배가 아니라, 다른 꽃들이 추하게 시들어 꽃잎을 하나둘 힘없이 떨굴 때, 동백은 송이째 툭 떨어짐으로써 제 사랑의 완결성을 증명한다. 절대 시들지 않겠다는 의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추겠다는 결단인 것이다. 


낙화의 그 순간 마치 해녀들이 깊은 바다에서 숨을 참다 올라와 내뱉는 숨비소리와 닮았다. 삶의 막다른 골목, 산소 한 모금이 간절한 임계점에서 터져 나오는 그 휘파람 소리, 그것은 죽음의 문턱을 발끝으로 툭 치고 올라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생명의 확인이다. 동백이 나무를 떠나 지면에 닿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공기를 가르는 소리 없는 진동 속에서 나는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숭고한 생명력을 본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누구나 가슴 속에 동백 한 그루씩 품고 살지만, 정작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차가운 겨울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는 드물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견뎌내야 내뱉는 숨비소리처럼, 우리 삶의 진실 또한 가장 시린 계절의 끝자락에서야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법이다. 


나는 이제 그 숨비소리로 당신을 부르고, 뼛속까지 시린 겨울의 뒤안길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그 수많은 만남과 이별들을 동백의 붉은 빛으로 치환해 본다. 돌아보면 나의 생도 늘 겨울이었고, 남들이 봄의 화원을 거닐 때 나는 홀로 얼어붙은 땅을 일구며 보이지 않는 꽃눈을 기다려야 했다. 절망이 소리 없이 내려앉아 마음의 창을 가로막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마당 한구석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던 동백의 붉은 화인이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동백의 붉음은 더욱 선명해지고, 배경이 어두울수록 빛은 그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 삶의 시린 계절도 당신이라는 동백 덕분에 따스한 느낌 하나를 얻었고, 당신이 건넨 위로와 헌신은 내 메마른 가지에 수액을 돌게 했고, 마침내 내가 이 차가운 대기 속에 붉은 숨비소리를 내뱉게 했다. 창밖의 어둠이 다시 짙어지고, 내일 새벽이면 창가에는 또다시 성에가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고, 성에 너머 저 어둠 속에서 제 심장을 달궈 올리는 동백의 뜨거운 고동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동백, 그 붉은 숨비소리로 피는 모습은 이제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으로 남았다. 진 자리에 다시 필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이 시린 계절을 축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떨어지는 순간조차 아름다운 저 꽃처럼, 나의 삶도 누군가의 디딤돌 위에서 가장 붉은 숨결로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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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시인.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너의 이름은 사브라』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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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별촌

붉은 선혈 자국 같은 낙화를 한 생의 희생으로 보고 그 또한 이듬해의 거부힌 수 없는 희망으로 축약하는 자세가 얼마나 돋보이는지요. 잘 읽고 집앞 지지 않은 동백을 다시 한번 더 살펴봅니다
아. 불이야, 불이야
내년의 붉디 붉은 희망이여. 더욱 불 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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