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0(월)
 

설이 자리를 옮겼다


해안 강민주


코로나 이후,

시골의 설은

조용히 숨을 줄였다.


한때 명절이면

마당 가득 들어찼던 차들.

엔진 열기와 함께

반가움이 먼저 피어오르던 골목은

이제 몇 집 앞에서만

성긴 이빨처럼 드문드문 숨을 고른다.


멋지게 지은 벽돌집의

불 꺼진 창문들이

저마다 사연을 닫고 서 있다.


남의 집 며느리 옷차림까지

슬쩍 보며 말 한마디 얹던 어르신들.

그 웃음과 흉은

어느 순간

마을 끝 새로 단장한 무덤 쪽으로

주소를 옮겼다.


이제는 말소리보다

묘비가 더 또렷한 마을.


자식 아홉을 낳아

온 동네를 들썩이게 하던 집도

설날을 요양원 면회실 의자 위에서 맞는다.


설이 그렇게

자리를 옮겼다.


기후와 나이를 감당하지 못해

베어낸 사과나무 자리엔

염소 몇 마리가

드문 풀을 툭툭 뜯는다.


무엇보다

세뱃돈 받아 신이 난 아이 손을 잡고

“여기가 아빠 어릴 적 놀던 곳이야”

말해 주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한때 든든한 노후라 믿었던 논과 밭.

자식들 이름처럼 마음에 새겨 두었던 땅.


씨를 뿌릴 손은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흙 냄새보다 화면 불빛에 익숙해졌고,

남은 어른들의 허리는

이미 오래전 굽었다.


시댁의 설도 달라졌다.


발 디딜 틈 없이 웃음이 넘치던 상 둘레에

이제는 빈자리가 먼저 눈에 밟힌다.


“남자는 부엌에 들지 않는다”던 말은 힘을 잃고,

엄마를 대신해 앞치마를 두른 고1 아들과

작은 서방님들이

조용히 전을 뒤집는다.


나는 문득

명절마다 상을 차리며

속으로 울던 젊은 날을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며느리였고,

누군가의 기대였으며,

기준에 닿으려 애쓰던 사람이었다.


스물다섯 해 가까이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계절을 건넜지만

끝내 서로의 속까지 완전히 열어 보이지는 못한 

시부모님과 나.


주름 깊은 손이

전을 하나 더 얹고,

작은 병에 담긴 참기름을

말없이 건넨다.


“이거 가져가라.”


그 말 속에는

사과도, 미안함도,

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도

함께 실려 있다.


차 트렁크에 그 무게를 싣는다.

뚜껑을 닫는 순간

참기름 향이 차 안 가득 번진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그들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었을 텐데.


명절은

사람이 많아서 오는 날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조용히 서로를 놓지 않는 날인지도 모른다.


텅 빈 밭 위로

설날 햇빛이 내려앉는다.


나는 그 빛 아래 서서

생각한다.


이 적막은

우리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전을 부치고

참기름을 건네며

말 대신 사랑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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